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한 베짱이 Dec 12. 2019

신숙주가 말하길 "상사가 먼저 손을 내밀게 하라"

신동욱, 조선 직장인 열전, 국민출판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잦은 퇴사 욕구에 시달린다. 나도 3년 차에 한 번 심한 퇴사 욕구가 솟구쳤다. 회사가 하는 일 하나하나가 마음에 안 들었다. 다른 회사로 간다면 이런 대우는 받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이직하지 않았다. 최소한 여기서 먼저 인정을 받아야 베베 꼬인 배알이 풀릴 것 같았다. 그래서 버텼다.


두 번째 퇴사 욕구는 10년 차에 왔다. 육아휴직을 1년가량 하고 복직했다. 그 자리 그 직무로 복귀했다. 그러나 갖은 잡일이 나에게 몰려왔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더 이상 잡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이직 권유가 있었다. 이직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새롭게 얻을 것과 잃을 것을 비교했다. 생각보다 직장에 10년간 쌓아 놓은 평판이 꽤 많았다. 급여가 50% 오르는 것도 아니었기에 접었다.


만약 퇴사 욕구가 솟구쳐 오르던 그 시기에 이 책을 보았다면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퇴사하고 싶다는 욕구에 집중하 않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볼 수 있었을까? 불만을 가지기 전에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을까? 불만보다는 자기 계발이 먼저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신숙주처럼 상사가 먼저 같이 일하자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난 역사학과를 나와서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다.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역사학과는 불리했다. 친구들이 금융자격증을 딸 때 난 답사를 다녔다. 내가 가진 자격증이라곤 답사에 필요한 운전면허증뿐이었다. 자기소개서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운이 좋아 어찌어찌 회사에 들어왔다. 역사를 너무 좋아했던 만큼 역사를 회사일에 접목시키려 노력했다. 일부러라도 역사가 회사 업무에 도움이 되는 측면을 찾으려 했다. 


역사학을 공부한 사람은 보편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기에 치우침 없이 업무처리를 할 수 있다. 항상 사실로 의견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회사일을 빈틈없이 처리하기 좋다.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다. 사실을 배열하여 논리를 뒷받침해야 하므로 합리적인 업무 처리가 가능하다. 후배들을 만나 소주 한 잔 할 때 잘난 척할 용으로 준비해 놓았다. 지금 이렇게 하고 있냐고? 노 코멘트하겠다.


이랬던 나이기에 이 책을 만났을 때 기쁨은 컸다. '조선의 위인들이 들려주는 직장 생존기'라... 매력적이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대신해주듯 시원했다.


상사와 함께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겼다. 그러나 정도전은 나를 보라고,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처세만큼 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륜은 이런 나에게 처세는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능력이라 말했다. 임원의 인사가 있을 때마다 마음 졸이며 추이를 지켜보는 나에게 신숙주는 자신의 가치를 높인다면 상사가 먼저 손을 내밀 거라 말해주었다. 유성룡은 오직 위기만이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과 아이디어의 힘을, 김육은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제안하는 끈기를 알려주었다.


'정도전'부터 '김육'까지 총 11명의 직장생활 성공스토리와 '홍국영'부터 '강홍립'까지 6명의 비운의 직장인까지 총 17명의 조선시대 위인의 직장 이야기를 다루었다. 읽으면서 '너무 당연한 이야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 당연한 이야기에 빠져든다. 위인의 직장생활을 이야기 풀어내고 현재의 직장생활에 적용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자칫 단순한 구성으로 지루할 수 있지만 위인의 이야기는 생생하고, 공감 백배의 현재 직장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를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든다.


신숙주 편과 조광조 편은 지금 내 직장생활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직장생활이라는 게 드라마처럼 누구 하나 멋들어지게 두드러지기 힘들다. 프레젠테이션, 어마어마한 계약 성사, 프로젝트 추진 등으로 한 번에 부각을 나타내기는 여간해선 쉽지 않다. 꾸준히 평판을 쌓고 자기 계발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키워 나간다면 신숙주처럼 언젠가는 상사가 손을 내미는 그런 직장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술자리 직장생활 격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중간만 해라!', '시키는 것만 하면 된다', '딱, 월급 주는 만큼만 일하자'였다. 그러나 조광조 편을 읽으며 이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조광조는 상사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 냈다. 모두가 하나의 논리에 빠져 있을 때 이를 타개할 전혀 새로운 논리를 가져와 풀어냈다. 이러니 상사가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항상 상사의 생각 그 너머를 봐야 한다.


길게는 약 600년 전 사람들의 이야기다. 공감도 되지 않거나, 뜬구름 잡는 뻔한 이야기일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담 없이 읽기 시작하면, 내 직장 생활과 조선 위인의 직장생활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책에 빠져들면, 곧 사무실 내 앞자리에 앉아 있는 '이항복'대리와 팀장님 자리에 앉아 있는 '황희 정승'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성장판독서모임 서평단 2기의 활동으로 출판사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위의 서평은 전적으로 제 주관적인 감상임을 밝혀 둡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허니맨은 누구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