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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지현 Aug 13. 2023

부모님 댁에서 독립할 타이밍

돈 vs 자유,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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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공짜로 누리는 부모님 댁이냐, 방해받지 않는 삶을 위한 독립이냐.


주말에 다녀온 에릭 요한슨 사진전에서 해답을 얻었다. 몇몇 작품 속 배경은 작가의 고향이었다. 온통 초록의 들판, 나무, 산, 논밭만 보이는 허허벌판 시골이었다. 그는 농장에서 자랐고,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다. 농사일보다 그림과 컴퓨터에 관심 있는 자식을 지지했다고 한다. 창작자에게 '자연 풍경'과 '지지자'는 필수요건인가 보다.


내 방 책상에서도 색깔과 키가 재각각인 나무와 잔디, 찰랑이는 물, 넘쳐흐르는 맥주 같은 분수가 보인다. 가끔은 식탁에서 작업을 하는데 생각이 막힐 때 창가 앞 책상에 오면 영감이 떠오른다. 침대와 책상이 전부인 3평 남짓의 공간이지만 아이디어는 경기장 크기만큼 쌓이는 것 같다. 메모 앱에 모인 것들을 실현할 시간이 부족한 느낌이다.


부모님 댁은 위치도 훌륭하다. 도보 5분 거리 역세권이라 차가 없어도 이동이 자유롭다. 영감이 필요하다 싶으면 서점이나 갤러리에 가서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받아올 수 있다. 아파트 내에 편의시설도 잘 되어 있어 집순이에겐 최적이다. 한여름에도 춥다는 말이 나오는 헬스장이 있어 사계절 무리 없이 체력을 다질 수 있다. 무인 북카페에서는 시중 커피숍 반 값에 다양한 음료를 마실 수 있고, 드라마 세트장 같은 서재 인테리어와 식물들 속에서 시간 제약 없이 작업이 가능하다. 작은 도서관을 통해서는 조용히 집중할 수 있고, 미리 신청해 두면 신간도서도 경쟁 없이 볼 수 있다. 필라테스 센터와 에스테틱 샵, 프랜차이즈 가게들도 정문을 나서면 즐비해 있다.


뷰가 좋고 교통, 상권 모두 합격인 곳에 살면서 나는 돈 한 푼 들지 않는다. 두 분이서 사는 집에 한 칸 남아있던 방을 쓰고,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더 놓아 먹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몸테크 없이 돈 모으기엔 이만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엔 장단점이 있는 법이다. 서로 다른 인생관과 라이프스타일로 초반엔 부딪히기 일쑤였다. 부부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 간에도 이렇게 많은 존중과 배려가 필요할 줄은 몰랐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하고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키보드만 두들기고 있는 나에 대해 그들은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제법 확고한 목표를 보존해 온 나도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법이다. 이런 말을 계속 반복해서 듣는다면 누구라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돈이 돼야지.”

“누가 네 글을 읽겠니?”

“뜬구름 잡았다는 걸 곧 스스로 알게 될 거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전 남자친구와 그의 부모님까지 가세했었다. 내가 설득하고 증명해 보여야 할 사람들이 두 배나 늘어났다는 사실에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세상에 내 편이 없는 것 같은 말들을 주기적으로 들려왔다.


“댓글 알바 같은 걸 한다는 거냐?”

“서로의 조력자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해 봐. 언젠가 스스로 포기하는 날이 올 테니까.”


정신과 의사들이 쓴 책을 보면 해로운 영향을 주는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제시한다. 비아냥거림, 조롱, 비웃음, 걱정, 불안, 패배의식이 묻어나는 말과 행동을 차단해야 했다. 결국 나는 이별을 택했는데 천륜은 쉽사리 끊을 수 없는 것이기에 어떻게든 적응해야 했다. 사실 가시적인 수익을 보여주기 전까진 안심시킬 수 없을 것 같아 약간의 거리를 두며 살기로 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화를 자제하면서.


하숙집에 사는 학생처럼 지냈던 것 같다. 내가 그날의 작업을 마무리하는 시간은 이미 부모님의 취침시간이었다. 빛과 소리에 깨는 일이 없도록 까치발을 세우고 신중히 문을 닫았다. 샤워를 마치면 바닥의 물기를 수건으로 말끔히 닦고, 배수구에 걸린 머리카락들을 제거했다. 우리가 함께 살기 전과 후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도록 배려하고 조심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습관이 들면 혼자 살 때도 나에게 좋은 태도가 될 것 같아 견딜만했다.


지금은 부모님이 나를 응원하며 기다려주는 쪽으로 바뀌었다. '자연'과 '지지'가 충족된 후로 일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어 창작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성과도 나왔다. 아직 금전적인 성과는 없지만 마음의 안정이 결과물의 수준을 높여서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11월에 실업급여 지급이 중단되면 누가 언제 또 적으로 바뀔지 모르는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체로 좋은 조건인 이곳을 언젠가 떠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종잣돈이었다. 목돈을 전세자금에 묶이도록 하지 않고 투자로 굴리고 싶었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이 말은 진리일까? 때마침 정부의 전세자금 대출에 관한 발표 소식이 들려왔다. 최대 2억까지 연 1.5~2% 금리로 빌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2억이면 혼자 살기엔 으리으리한 소형 아파트를 얻을 수도 있어서 선택지가 훨씬 넓어진다. 그럼에도 월 25만 원 정도의 대출 이자만 내면 된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고, 종잣돈으로는 다른 투자 자산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내년이면 아버지가 만 60세 이상이 되셔서 무주택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독립을 결심했던 시기와 조건, 혜택이 모두 맞아떨어진다. 간절히 바랐더니 온 우주가 도와주는 느낌이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어느 지역을 고르면 좋을까?


여러 개의 지하철 노선이 지나가는 지역은 비싼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렵다. 나의 우선순위는 첫째가 뷰, 둘째가 교통, 셋째가 상권이다. 그렇다면 번화가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떨어진 지역이 내겐 황금입지였다. 녹지 비율이 높은 편이고, 문화 시설 및 일자리가 많고, 20분 이내면 어디든 갈 수 있어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서면 옆 가야, 수영 옆 망미가 될 수 있다. 


황금 입지에 대한 개념은 책 박성혜의 <입지 센스>를 통해 배웠다. 자연환경, 교통, 상권, 학군, 직주 근접 모두 만족하면 최고지만 그런 곳은 수요가 많아 금액대가 높게 형성된다. 자금 상황, 라이프스타일, 미래 계획을 고려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2~3가지라도 충족하면 눈높이를 낮출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시골에 일정 기간 살아 본 경험을 통해 나는 교통, 상권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버스가 하루에 3대밖에 안돼서 놓치기라도 하면 택시를 타야 해서 교통비가 많이 들었다. 돈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시골도 쓸데없는 지출이 생겼다. 큰길까지 걸어가면 버스가 10분 간격으로 왔지만 여름엔 속옷까지 다 젖는 걸 감수해야 한다. 차가 없으면 정말 불편했다. 차를 탈 일이 매일같이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구입하기도 애매했다. 상권이 형성된 곳까지 가려면 걸어서 20분, 택시비는 기본요금 이상이었다. 슬리퍼 신고 백화점 갈 수 있는 슬세권이 왜 인기가 많은지, 그렇지 않은 곳은 자유를 얼마나 제한하고 억압시키는지 몸소 느꼈다.


머리와 몸으로 학습한 기준에 따라 독립해 살 곳을 정했다. 살아보면 생각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살아봐야만 알 수 있다. 


사무실 겸 촬영 공간도 필요했는데 잘됐다. 카메라만 켜면 되는 환경으로 세팅돼있으면 시간과 에너지가 절약된다. 내 취향이 반영된 가구와 소품으로 업무 효율을 떡상시킬 예정이다. 일단 작업의 첫 단계는 책상 앞에 앉는 것인데 그런 분위기를 만들면 이미 반은 성공한 것이 아닐까?


"시작이 반이다."


클리셰는 어쩔 수 없이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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