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발은 신세계!
"엄마, 또 졸았지?"
"응."
"엄마가 조니깐 애들이 쳐다보잖아."
"뭐 어때. 졸리면 잘 수도 있지."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에 아이들이
집 근처 체육센터에서
인라인을 배웁니다.
4시정도 되었을 때는
이미 체력을 거의 다 소진한 후라
너무 피곤했습니다.
아이들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기도 하고
노트북을 가져가서 글을 쓰기도 했는데
이따금씩 졸았어요.
그럼 아이가 인라인 쉬는 시간인
4시 30분에 와서
졸지 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조는 게 그다지 창피하진 않아요.
졸면서
침을 흘리거나
입을 벌리고 자거나
옆으로 고꾸라지지 않으면 괜찮아요.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 기다리는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보낼까 고민하다가
같은 센터에서
같은 시간에 하는 수영을 등록합니다.
고민이 많았어요.
이미 수영장을 한 번 옮겨서 간신히 적응을 했는데
또 다시 옮기는 게 쉽진 않았거든요.
5월 1일은 노동절이었고,
5월 2일에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빠졌어요.
그래서 5월 3일 금요일에
첫 수업을 했습니다.
새벽 수영은 직장인이 많았고
아침 수영은 주부들이 좀 더 많았어요.
간혹 아저씨나 아가씨인 분들도 계셨는데
늘 궁금하긴 했어요.
직업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일을 하시길래 아침 9시에 수영을 하실까..
부러웠거든요.
보통 9시 수영을 하고
끝나서 씻고 수영장을 나가는 시간이 10시 30분정도니깐
직장을 다닌다고 하면 11시는 되야 도착할 수 있잖아요.
디지털 노마드족이신가...
싶기도 했지만요.
결국 친해지기 전에
수영장을 옮겨서
궁금증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오후 수영은 인기가 없어요.
마감이 잘 안되고
말일 즈음에 마감이 차요.
오후 4시는 시간이 참 애매하잖아요.
일을 하다가 중간에 일찍 오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죠.
새벽수영과 저녁수영은
어차피 씻어야 하는데
수영하면서 씻을 수 있잖아요.
오후 수영은 그럴 수 없잖아요.
아침에 안 씻을 순 없으니 아침에도 씻고
오후 4시에 샤워를 두 번하고
오후 4시에 샤워했어도 저녁가서 샤워해야 하니까요.
오후 4시 수영의 특이한 점은
초급반과 중급반 수영강사님이 같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수업을 하시는지
등록을 할 때만 해도 이해가 잘 안 되었습니다.
첫 날 수영을 하러 수영장에 갔습니다.
샤워를 하려고 샤워장에 갔는데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할머니들께서 자리이 철퍼덕 앉아서 때를 미세요.
오매. 신세계.
나중에 알고보니
목욕탕처럼 앉아서 씻는 곳이 일부 있는데
따로 의자가 준비되어 있진 않더라고요.
수영장을 옮길 때마다
참 헤매요.
수영장 사물함 사용법도 조금씩 다르고요.
샤워기 사용법도 다르고
수영장 내부 구조가 약간씩 다르거든요.
제일 힘든 건
샤워기 사용법이예요.
잘못 조작했다가
거센 찬물로 정수리를 맞았습니다.
온도 조절하는 걸
물을 트는 건 줄 알고
돌렸는데 안 나오길래
다른 레버를 돌렸더니
찬물이 뿜어져 나왔거든요.
간신히 씻고 수영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양팔접영 배우는 중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초급 말고 중급으로 가래요.
'어랏, 나 중급 실력은 아닌데...'
선생님께서 진짜
초보반 레인과
중급반 레인을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아주 바쁘게 가르치십니다.
힘드실 것 같아요.
저는 자유형, 배영은 다른 분들보다 조금 느린 편이고
평영은 초보분들 중에서 꽤 빨라요.
앞쪽에 줄을 서도 잘 따라가는 정도입니다.
한팔 접영도 중간 이상은 되는 것 같고요.
아, 물론 초보 분들 중에서요.
제 생각에는 제가 특별히 평영과 접영을 잘한다기 보다
다른 초보분들에 비해서
좀 더 수영을 오래 배워서 그런 것 같아요.
무려 15개월을 배웠는데도 초보니까요.
수영의 모든 영법의 실력이 비슷하지 않으니깐
좀 불편한 점도 있어요.
앞자리에 가면
자유형, 배영을 할 때 자꾸 불안하거든요.
뒤에서 쫓아오니까요.
그래서 전 늘 뒷자리로 가요.
뒷자리에 가서
자유형과 배영을 할 때는
마음도 편하고 좋은데
평영을 할 때 좀 불편해요.
앞분이 가다서다를 반복하니깐
뒤따라가면 저도 중간에 멈춰야 하거든요.
그래서 평영을 할 때에는
앞사람과 간격을 많이 두고 출발해요.
알고 봤더니,
오후 수영에는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오후 4시 수영반에서는
중급이 된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중급반이라서 그런지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오리발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 나 오리발 없는데?!'
사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몇 달 뒤에 미국에 이사를 할 예정이라
집에 있는 짐들을 열심히 버리는 중이었거든요.
고민하다가 사기로 합니다.
'미국가서 오리발 끼고 수영하지 뭐.'
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리발을 끼는 첫 날
오리발을 신다가 넘어질 뻔 했습니다.
오리발 바닥이 엄청 미끄럽더라고요.
오리발을 끼고 자유형을 도는데
'와'
이건 신세계예요.
너무 신나서
저도 모르게 수영하면서
계속 입을 벌리고
웃게 되더라고요.
덕분에 물도 먹었어요.
그렇지만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앞으로 쭈욱쭈욱 나가니깐
너무너무 신기해서요.
'오리들은 수영할 때 이런 느낌인가?'
싶기도 했어요.
오리발은 정말로
너무나 대단한 물건입니다.
누가 발명한건지
진짜 엄지척입니다.
오리발을 끼고 수영하는 날이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