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해마다 연초가 되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인 작가와 평론가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수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등단한 이들은 향후 한국 문단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바람’이자 ‘미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요즘은 등단과 동시에 용도 폐기되는 신인들이 허다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지면 부족’의 이유를 꼽는다. 활자에서 이미지, 영상의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신인 작가와 평론가들의 ‘중앙 무대’라고 할 수 있는 오프라인 기반의 신문‧잡지 시장 자체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등단을 해도 작가가 지면을 통해 독자와 만나거나 언론에 노출될 기회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모 지역신문으로 등단한 정모씨(30세)는 “보통의 경우 등단한 곳에서 우선적으로 지면을 받는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데, 내가 등단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우리 가족과 친구들뿐이다. 규모가 큰 중앙 일간지나 문예지로 재등단해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이런 와중에 이제 갓 등단한 신인 작가나 다양한 글쓰기 플랫폼에서 특색 있는 글을 쓰는 비(非)등단 작가들이 글을 투고할 수 있는 개성 넘치는 독립잡지가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문예 무크지(단행본과 잡지의 특성을 동시에 갖춘 출판물) <언유주얼>이 대표적이다. <언유주얼>은 밀레니얼 세대를 주요 독자로 한 잡지로, 젊은 세대들에게 중요하고 밀접한 하나의 키워드를 매호 주제로 선정해 지면을 꾸린다. 이번 6호의 경우 ‘어떤 대상을 열성적으로 좋아해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을 뜻하는 ‘덕질’의 세계를 담았다.
이제껏 <언유주얼>에는 글배우, 나태주, 박상영, 신형철 등 다양한 분야의 인기 작가들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이뿐만 아니라 등단은 했지만 투고 기회를 얻지 못한 ‘중고 신인’을 포함해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 브런치 등에서 개성 있는 글을 쓰는 비(非)등단 작가에게도 꾸준히 원고를 의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유주얼>의 이선용 대표는 “<언유주얼>의 경우 가독성을 위해 한 편의 글이 두 페이지를 넘지 않는다. 그리고 매호마다 키워드에 맞는 글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들의 아트 워크(art work : 실내를 회화, 조각, 판화, 포스터, 태피스트리 따위의 미술 공예품으로 장식하는 일)를 제작한다는 점이 다른 잡지와는 다른 <언유주얼>만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내면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언니네 마당>은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잡지 중 하나이다. <언니네 마당>의 정주연 편집장은 “종래의 여성지가 패션, 뷰티, 육아 등에 치중하는데, <언니네 마당>은 외모에 치중하기보다는 내면의 이야기를 담은 잡지”라며 “유명인을 섭외해 글을 싣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일반인이 참여할 수 있는 ‘참여 잡지’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면에 글을 쓰는 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작가는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라며 “<언니네 마당>의 필진 섭외 기준은 ‘발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다양한 분들에게 지면을 내주고 싶다”고 밝혔다.
‘밥벌이하며 딴짓하는 모두를 위한 잡지’라는 기치를 내건 <딴짓> 역시 독특한 콘셉트로 독자의 눈길을 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이 아닌 ‘딴짓’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이 잡지에 담겼다. 특히 <딴짓>에는 딴짓을 통해 무료한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독자들이 ‘지속가능한 딴짓’을 영위할 수 있는 삶을 위한 재기 발랄한 글들이 실렸다.
<딴짓>의 박초롱 대표는 “이 잡지는 독자들의 ‘딴짓’을 부추기고 있다. 딴짓하며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면 남은 삶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여전히 ‘만지며 읽는 글’을 포기할 수 없는, 다채로운 독립잡지가 독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글쓰기에 흥미가 있는 독자들은 물론 컴퓨터 바탕화면에만 글을 한가득 쌓아둔 이름 모를 필자들 역시 먼저 독립잡지의 문을 두드려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