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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신문 Jan 21. 2020

‘그냥 쉰다’는 사람 역대 최고

베스트셀러는 “쉬어도 괜찮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19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 인구는 209만명으로, 전년보다 12.8%(약 23만8,000명) 증가했으며,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200만명을 넘겼다. ‘쉬었음’ 인구의 연령대별 증가폭을 보면, 전년 대비 20대가 17.3%, 30대가 16.4%, 40대가 13.6%, 50대가 14%, 60대 이상이 10.3% 증가했다. 


비경제활동인구란 만 15세가 넘은 인구 가운데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을 말하는데, 쉽게 말하면 일자리도 없지만, 일자리를 구할 의지도 없는 인구를 말한다. 이 중 ‘쉬었음’ 인구는 일할 능력은 있지만 병원 치료나 육아, 가사, 교육 등 구체적인 사유 없이 막연히 쉬고 싶어서 일을 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일각에서는 구직을 하다가 잘 되지 않아 구직을 포기하는 이들이 주로 ‘쉬었음’이라고 답한다고 분석하는데, 사실 이들이 쉬고 싶었던 각기 다른 이유는 직접 이야기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단지 보통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연령대에서 ‘쉬었음’이라고 답한 이들의 증가폭이 나이가 들어서 쉬는 60대 이상의 증가폭보다 크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실 통계청의 발표가 있기 전에도 60대 이하의 연령대에서 ‘그냥 쉬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서점가 트렌드를 보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교보문고 통계에 다르면 지난해 40대(34%), 30대(27%), 20대(19%), 50대(14%), 60대 이상(5%) 순으로 책을 많이 샀는데, 베스트셀러 목록에 담긴 많은 에세이들이 ‘그냥 쉬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이다.         


가령 한 베스트셀러 에세이에서는 스물다섯 살에 의류사업을 하다가 3,000만원의 빚을 지고, 전 재산 34만원을 들고 고시원을 전전하며 떡을 팔던 한 청년이 떡이 잘 팔리지 않아 숱한 밤을 눈물로 지새운다. 서울역 근처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찾아가 돗자리를 깔고 큰절을 하며 떡을 팔아봤으나 돌아오는 것은 돈이 아닌 수치심뿐이었다. 다행히 청년을 인상 깊게 본 한 기업의 회장이 8개월 동안 팔리지 않던 떡 8,000만원어치를 사주고, 청년은 그 돈으로 빚을 갚고 다시 의류사업을 시작하지만 또다시 실패한다. 나이는 20대 후반, 적지 않았지만, 그 후 청년은 2년간 더 이상 누구도 만나지도 않고, 취업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적은 돈을 벌며 그냥 쉰다. 책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에 담긴 베스트셀러 작가 글배우의 이야기다. 


2년의 쉼.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시기에 허송세월했다고 할 수 있으나, 작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그냥 쉬었던’ 2년은 앞으로 살아갈 방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한 시간이었고, 이 시간이 작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에서 작가는 “물론 불안하고 때론 고독하기도 하겠지만/불안하고 고독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혼자 있는 시간을 불안한 채로 다 써버리지 않고/잘 보내게 된다면/혼자 있는 시간은 당신에게 많은 선물을 줄 거라 믿는다”고 말한다. 또한, “무언가에 지쳤다면 맞서지 말고/ 혼자가 되어 보길 추천한다./오래 혼자 될 수 없다면 잠시라도.//그럼 보이지 않았던 것들과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지가/더 명확히 보이게 된다”고 덧붙인다.


웬만한 세상일에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의 나이에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그냥 쉰’ 이도 있다. 단지 지쳐서, 이렇게 사는 게 맞는가 싶어서 무심코 사장님 책상 위에 떨어뜨린 사표, 그러나 회사는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를 잡지 않았다. 베스트셀러 에세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작가 하완의 이야기다. 


작가가 쉬는 동안 생전 처음으로 영위하게 된 ‘노력하지 않는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득도’하게 했다. 그동안 그저 열심히, 견디기만 하는 재미없는 인생을 살아왔던 그는 ‘그냥 쉼’을 통해 인생의 방향과 관점을 바꿀 수 있었다. 예컨대 과거 그는 늘 다른 이들이 수년에 걸쳐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부러워했으나 항상 마음이 조급했고, 빨리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난 재능이 없나 봐’라는 생각으로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냥 쉬고 보니 작가는 그러한 결과물이 그의 재능 때문에 만들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속도만을 중시하는 삶에서는 애초에 이룰 수 없었던 목표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고/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일단 당신은 고생했다/당신은 고생 많았다/참 고생 많았다//그동안 많은 날을 숨죽이고 살아오느라/마음 졸이며 잘하고 싶은 마음 하나만을 가지고 여기까지 살아오느라//당신이 정말 힘든 건 너무나 지쳐서이다./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당신이 지쳐서이다.//그래서 이제는 그만하고 싶은 것일지 모른다./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지 모른다./누구나 힘들면 그만하고 싶으니깐//스스로를 너무 작고 못나게 바라보지 말자.//그동안 얼마나 노력했는가/그동안 얼마나 잘하고 싶었는가.” (글배우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中) ‘그냥 쉬어도 괜찮다’는 위로를 전하는 에세이들의 유행. ‘쉬었음’ 인구의 증가는 통계청 발표보다 서점에서 먼저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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