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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신문 Feb 18. 2020

불안이 곧 성공, 불안이란 몹쓸 것의 명품 가치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불안의 시대다. 선택의 자유가 폭넓게 허용되면서 이론상으로 더 나은 세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현실적 제약이 없지 않지만,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 갈 자유가 허용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자유가 올가미처럼 개인을 옥죄는 경우가 많다.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잘 해낼 수 있는지 등 불확실한 고민이 많아지기 때문.


SNS의 발달로 물리적 제한 없이 실시간 소통이 가능해진 상황도 불안을 키우는 요소다. 불필요한 정보를 과잉 습득하고, 과도하게 비교하게 된다. 예전 같으면 만족할 일도, 타인과 비교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새 발의 피)처럼 느껴지고, 주위에 온통 나보다 뛰어난 사람만 있는 것 같다. 요리조리, 아무리 살펴봐도 ‘비주류’인 것만 같은 ‘패배감’이 가슴을 움켜쥔다.


사실 이런 불안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닌 정상적(?)인 감정이지만, 최근에는 불안해서 죽을 것 같은 ‘불안장애’를 호소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8년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사람 수가 15만9,000명으로 2014년 9만3,000명보다 70.5% 증가했다. 연평균 14.3%로 늘어난 꼴인데, 전체 인구로 보면 많은 숫자가 아니지만, 그 증가율은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거부당하는 두려움’을 꼽는다.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 인정받고, 타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 ‘용납’되는 존재를 갈망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상황에 ‘공포’를 느끼는 것. 임상심리 전문가 한기연 박사는 책 『이 도시에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에서 “이들 내면의 가장 강한 동기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이라며 “인정을 받아야 숨 쉴 것 같은 절박한 요구는 거의 항상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최선의 선택’에 대한 강박을 문제점으로 지목한다. 최고의 효율만을 추구하는 데 따른 폐해인데, 사회학자 하인츠 부데가 책 『불안의 사회학』에서 “사람들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직전에 불안해한다. 지금 이것을 선택하면 다른 것을 놓치는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결국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며 거부당하지 않는 용납받는 사람이 되려는 마음이 불안의 씨앗이라는 건데, 전문가들은 그런 불안을 긍정적으로 이용하라고 말한다. 불안의 싹을 자르는 건 불가능하니 긍정적으로 이용하라는 것. 심리치료사 크리스 코트먼 박사는 책 『불안이라는 자극』에서 “성장은 시련을 성공적으로 이겨냈을 때 생기는 부산물이다. 시련이 없으며 성장도 없다. 따라서 불안은 성장의 필수 요소”라고 말한다.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큰 성공을 거둔 많은 사람은 성공요인으로 ‘불안’을 꼽는다. 영화 <기생충>(2019)으로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 역시 과거 인터뷰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궁극의 공포’란 ‘과연 내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이 드는 때’”라며 “이처럼 공포가 밀려드는 건 ‘집착’ 때문이다. 집착하는 그 무엇이 해결돼야만 하는데 그것이 잘 안 될까 봐 미리 겁부터 내는 거다. 담아내고 싶은 이미지가 머릿속에 있는데, 그것을 카메라로 그대로 옮겨낼 수 있을지, 콘티가 제대로 작성되지 않으면 어떡하나, 배우들이 풀어 줄거야, 아니면 편집에서 묘수가 나올 테지, 행여 편집이 깔끔하지 않더라도 음악과 사운드가 메워 주겠지, 그래도 안 되면, 다음 영화를 잘 찍어야지 등 끊임없는 걱정과 겁에 내쫓긴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궁극의 공포란 영원히 해소되지 않는 것이므로 그냥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사진=오재우 기자]

연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메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에서 건축설계 석사학위를 받은 유현준 건축가 역시 ‘불안감’을 성취동기로 꼽는다. 그는 “내가 건축일을 할만한 재능이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천부적인 재능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인데 내가 할 수 있겠나’하는 불안한 마음에 더 열심히 했다”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되는 길은 없다. 그래서 인생이란 길이 열리는 대로 가야 되는 거다. 차선이 모여서 최선이 되는 거니까”라고 말한다. 40대 후반까지 어려운 시기를 겪다가 원고료 15만원이 아쉬워 쓴 칼럼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어 출간한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가 흥행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른 그는 “이 모든 게 불안이 만들어 낸 성취”라고 말한다.


크리스 코트먼 박사는 말한다. “불안은 에너지다. 그 에너지를 이용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법을 배우기 바란다. 누구나 불안 에너지를 성장 자극으로 바꿀 수 있다. 불안이라는 괴물에게는 결국 내가 허락하는 것 이상의 이빨은 없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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