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에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주의 잡지 <이프>의 글들은 문자 그대로 파격적이었다. ‘지식인 남성의 성희롱’이라는 주제로 처음 독자와 만난 <이프>는 당대의 문제작이었던 이문열 작가의 소설 『선택』을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날카롭게 독파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이 외에도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간통죄 폐지’(13호), ‘가부장제와의 전면전’(15호), ‘이제 낙태를 말한다’(16호)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제를 선보이며, 한국의 남성중심주의에 균열을 일으켰다. 2006년 봄, 36호를 끝으로 완간한 <이프>는 기존의 패션, 뷰티, 쇼핑 등에서 벗어나 페미니즘을 완강하게 주장한 여성주의 잡지로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2017년, 할리우드에서 촉발한 ‘미투 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페미니즘은 이전보다 깊숙이 우리의 생활로 스며들었다. 이에 따라 페미니즘과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들이 쏟아졌는데, 최근 문학, 영화,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페미니즘을 적용한 여성주의 잡지가 다시금 독자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 우먼카인드
<우먼카인드>는 2014년 호주에서 창간된 여성 잡지다. ‘여성을 위한 새로운 문화 잡지’라는 기치를 내건 <우먼카인드>는 문학, 철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되는 이슈들을 여성의 시각으로 다룬다. 27개국에서 3개월마다 계간지 형태로 발행되며, 2017년 11월에 한국판이 정식 출간됐다. 현재 10호까지 발행된 상태다.
<우먼카인드> 한국판은 소개글에서 “시공간적 경계 및 제약 없이 동시대 여성의 풍경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세계 각지 여성의 삶과 이야기를 전 지구적 연대라는 관점에서 다층화한다”며 “지리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인종적 차이를 넘어 여성의 문제가 가지는 보편성에 주의와 관심을 기울인다”고 설명한다.
■ 세컨드
<세컨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시네 페미니즘 매거진이다. 창간호에서 ‘입체적인 캐릭터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창녀와 성녀의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비(非)인간적으로 재현돼 왔던 여성 캐릭터에 주목한다. 나아가 깊이가 있는 입체적 캐릭터란 무엇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질문한다.
지난 11일 가장 최근 발간된 <세컨드> 4호의 주제는 ‘흐르는 아시아’이다. 관계자는 소개글에서 “아시아는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문화적으로 멀리 있다. 여성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아시아는 가부장제와 전쟁, 식민주의 등에 대항하는 페미니즘 최전선에 있다. 아시아 각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이 어떤 관점으로 여성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지 탐구한다”고 설명한다.
■ 깨다
<깨다>는 노원여성회가 만드는 페미니즘 잡지다. 2019년 12월, <깨다>는 서울특별시와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지원으로 창간호를 발간했다. <깨다>는 ‘색깔로 보는 젠더감수성’ ‘2020 총선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자세’ ‘여성폭력을 이용하는 미디어, OUT!’ 등 다양한 생활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성차별 요소를 지적한다.
<깨다>의 박미경 편집장은 발간 인사에서 “노원여성회가 만드는 페미니즘 잡지 <깨다>는 모든 사람이 존엄한 존재 자체로 존중받으며 평등하기를 바란다. <깨다>는 이런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말’과 ‘행동’이 공존하는 지면 공론장이 되고자 한다”며 “우리의 이름처럼 차별을 ‘깨고’, 차별을 낳는 구조를 ‘깨는’ 실천하는 <깨다>가 되겠다”고 밝혔다.
책 『페미니즘 리부트』의 저자 손희정은 “내내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말을 기억하고 되새겼다.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그래, 싸우는 우리는 이길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의 싸움이 옳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페미니즘 잡지들 역시 글자로 세상의 편견과 싸우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가 조금 더 많은 사람의 마음에 아로새겨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