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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신문 Jul 29. 2020

'시인동네' 사생활 침해 논란에 ‘폐간’...

[사진=이유운 작가 트위터]

보통 무언가를 주는 쪽은 ‘강자’(권위자), 받는 쪽은 ‘약자’(초심자) 위치에 놓이기 마련이다. 문학상(賞)도 마찬가지. 대다수 시상 주체는 관록 있는 권위자, 수상 주체는 등단을 꿈꾸는 문학도인 경우가 많고, 이런 구도는 의도했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릇된 ‘위계 권력’ 남용의 가능성을 지닌다. 최근 월간 <시인동네>가 그런 의혹에 휩싸였다.


논란의 시작은 지난 22일 이유운 작가가 자신의 트위터에 <시인동네> 편집위원이 신인상을 빌미로 자신에게 사적인 내용을 캐물었다고 밝히면서다. 그는 “(과거 <시인동네> 편집위원이 내가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며 전화를 걸어) 목소리가 어리다면서 나이를 물어봤다. 학과와 대학을 물어봤고, 그리고 사는 곳을 물어봤다. 내가 등단하면 자기 제자가 되는 거라고 했다. 내가 모 시인을 얘기했는데, 그 시인도 자기가 키운 거라며 자기가 잘 키워줄 거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신인문학상은 내 시만 보고 평가하는 거 아닌가? 이상했다. 왜 ‘신인문학상’이 신인의 시를 발굴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일개 편집위원의 제자를 발굴하는 시스템이 됐으며 그걸 거리낌 없고 부끄럼 없이 말하고 다닌단 말인가? 이 시인은 그간 수많은 신인 시인들에게 이런 압력을 과시해왔다”고 적었다.


이유운 작가의 폭로를 시작으로 온라인에는 비슷한 내용의 주장이 다수 올랐고, 동시에 기성 문인들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시집 『프로메테우스』를 출간한 김승일 시인은 “이런 문단의 현실에 화가 납니다. 이번에 수락한 (<시인동네> 가을호에 실을) 시 청탁을 철회하려고 합니다. 피해자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권력은 언제나 문학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조해주 시인 역시 “최근 논란이 된 귀사 발행인의 언행이, 심지어 사과문까지도 많은 여성 시인들을 상처입혔고 잡지 자체에 대한 신뢰도에서 영향을 끼쳤음을 모르지 않으실 거라 생각한다”며 <시인동네>로부터 받았던 시 청탁을 거절한 사실을 밝혔다.


과거 <시인동네> 편집위원을 맡았던 박시하 작가 역시 “제가 편집위원 권유를 받았을 때도 싫다고 하자 ‘그거 니가 몰라서 그렇지 (그게) 권력이야’ 했던... 그런데 저는 남(자)편집위원만 가득하니 내가 감시하는 역할이라도 해보겠다고 싶어 한동안 그걸 했지요. 지금은 후회하는 일 중 하나”라고 전했다.


[사진=고영 '시인동네' 발행인 페이스북]

이런 상황 가운데 고영 <시인동네> 발행인은 지난 24일 입장문을 통해 사과의 말을 전했다. 그는 “<시인동네> 신인문학상 본선 진출자와의 사전 통화, 인정합니다. (전화로 결격 사유 확인) 과정에서 간단한 신상 정보를 물었습니다. 오랜 관행이자 관례라 (자세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방식이었습니다. 저의 방식이 ‘권력에 의한 위계 및 위력’으로 느껴 상처를 받으신 분이 계시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제 저의 방식은 폐기될 것입니다. 2020년 9월호를 끝으로 <시인동네>는 폐간하게 됩니다. 이것 또한 저의 방식입니다”라고 전했다. 이에 온라인에서는 ‘<시인동네>의 문학적 가치가 작지 않은데, 폐간은 너무 극단적인 선택 아니냐’는 우려와 ‘관행이란 변명과 함께 수습조차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방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이 공존하고 있다.


한편 고영 발행인은 본지 통화에서 여러 의혹에 관한 보다 자세한 해명을 전했다. 그는 “시인이 된다는 건 공인이 된다는 것이고, 그런 이유에서 사전 통화를 하면서 몇 가지 신상 문제를 물어본 건 사실이다. 유운 시인의 경우 시가 참 좋았지만, 전문 수업을 받지는 않은 것 같아 학교와 학과를 물어봤던 거다. (유명 시인을 제자로 뒀다는 발언과 관련해서는) 꼭 가르치지 않아도 작품을 심사해 등단을 시킨 경우에도 제자라고 한다. 그런 의미였고, 또 (유운 작가에게) ‘키워준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 등단도 안 한 시인을 내가 무슨 힘으로 키워주나”라고 해명했다.


이어 박시하 작가 발언 관련해서도 “(편집 위원직이) 문단 생활하는 데 유리하고 도움이 된다고 했지, 권력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보통 시집은 후원회를 두고 운영하는데 나는 후원회도 없이 매년 <시인동네>에 1억원 넘게 쏟아부었고, 인건비를 아끼려고 하루 4시간씩 자면서 혼자 일했다. 서울을 떠나 단양 산골에 혼자 있는데, 권력은 가당치 않다”고 밝혔다.


과거 <시인동네> 최종심에 올랐다고 주장하는 일부 인원이 ‘고 발행인이 신인 시인 등을 술자리에 불러냈다’고 전한 것과 관련해선 “2008년 1월 이후 술을 마시지 않는다. 송년회 등 일 년에 한두 차례 있는 공식적인 모임 외에는 술자리도 갖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시인동네> 폐간이란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해선 “이번 일과 관련해 <시인동네>와 관련된 시인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음해성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폐간을 결정하게 됐다. 시인은 이미지를 먹고 산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음해성 주장이 나오면 그런 이미지를 덮어 쓸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시를 쓰나”라며 “잡지는 내가 가진 전부다. 그걸 내려놓지 않고는 불필요한 논쟁이 계속될 것 같아 어렵게 내려놓게 됐다”고 밝혔다.


사실 확인이 필요한 몇 가지 부분을 제외하고 대체로 고 발행인이 ‘관행’이라 생각했던 부분이 젊은 시인들의 ‘인식’과 충돌한 모습인데, 최근 문학계에선 이 같은 관행의 충돌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수상거부란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었던 ‘이상문학상’ 사태 때는 시상 주체인 문학사상사가 수상작의 저작권을 3년간 양도하고 단편집 표제작으로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관행이라고 해명해 큰 논란이 일었다. 최근에는 김봉곤 작가 논란(지인과 주고받은 카톡 내용을 동의 없이 작품에 사용)과 관련해 문학동네, 창비 등의 출판사가 ‘수정 내용을 고지해 달라’는 (김봉곤 작가의 작품에 소개된 인물의) 요구에 관행적으로 소극 대응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어디까지가 기존 ‘관행’에서 비롯된 ‘잘못’인지, 어디까지가 ‘오해’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과거 ‘불쾌한 것들’을 참고 넘어갔던 상대적 약자들이 더이상 참지 않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약자가 늘 약자일 수 없고, 강자가 늘 강자일 수 없다. 사실 문학에서 강자, 약자를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데, 다행히 그 경계가 흐릿해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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