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1982년에 태어나 대학 졸업 후 홍보대행사에서 근무하다 서른한 살에 결혼, 딸을 낳은 후 전업주부가 된 김지영. 그를 주인공으로 한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일으킨 반향은 실로 놀라웠다. 여성을 향한 (직장 내/ 사회적) 차별, 여성이기에 느껴야 했던 일상의 두려움, ‘맘충’으로 비난받는 여성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면서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전했다. 여성에겐 격한 공감을, 남성에겐 여성의 삶을 이해하는 계기로 작용하면서 첫 출간(2016년 10월) 후 2년 1개월만(2018년 11월)에 누적 판매량 100만 부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서점가엔 이른바 ‘페미니즘’ 도서가 쏟아져 나왔다. 비문학 도서를 포함해 문학 작품이 다수 출간됐는데, 최근까지 남자에게 상처받고 일상의 평온을 빼앗긴 여덟 여성의 삶을 그린 소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여성의 ‘불안’을 여덞명의 여성 소설가가 풀어낸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등 여성의 ‘삶’, 그 안에 닮긴 ‘불안’, ‘불행’을 다룬 작품이 줄을 이었다. 작품 속 남성 절대다수는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로 그려졌다.
‘여자들에게 바치는 소설’이란 수식어를 달고 지난 6월 출간된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도 마찬가지. 여성 등장인물은 다채롭고 입체적으로 묘사된 반면 남성은 가해자이거나, 여성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 인물로서 납작하게 그려졌다. 정 작가는 작품 속 가해 남성의 자살마저 “(여성을 향한) 최종적인 가해였다”고 꼬집었는데, 해당 표현은 최근 미투 파문 속에 어느 정치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황과 겹쳐 크게 주목받기도 했다.
해당 소설을 향한 대중의 반응은 긍정 여론이 다수지만, 비판 여론도 적지 않다. 여성들로 하여금 ‘이건 완전 내 이야기’란 공감을 느끼게 하고, 여성을 향한 남성의 이해도를 높이는 긍정적인 면모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여성이 겪을 수 있는 모든 불행을 한데 모아 나열한 ‘불행 포르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은 최은영 작가의 소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도 드러난다. (대학 강의에서 한 대학생이 쓴)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어려움을 다룬 글에 관해 누군가가 “너무 극단적인 상황들만 나와 있으니까, 읽는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걸로 읽힐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지적하자 발표자가 “이 글에 나온 내용이 극단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도 모두 알지 않나요. 평범한 이야기잖아요”라고 반박하는 대목.
누군가에겐 ‘극단’, 또 다른 누군가에겐 ‘일상’으로 느껴지는 상황을 어떻게 해야 균형 있게 묘사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의 고전 『자기만의 방』을 쓴 버지니아 울프는 ‘등장인물에 대한 냉정한 균형 감각’을 강조한다. 작가가 캐릭터를 통해 본인의 분노를 직접 표현할 때 작품의 온전성이 깨진다는 것. 이런 관점에서 그는 다수의 페미니즘 작가들을 겨냥해 “고요히 써야 할 곳에서 분노에 싸여 쓸 것이고, 현명하게 써야 할 곳에서 어리석게 쓸 것 (중략) 등장인물에 대해 써야 할 곳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쓸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전했다.
평론가 오길영 역시 분노가 서린 페미니즘 작품에 관해 우려를 표한다. 그는 평론집 『아름다움의 지성』에서 “이런 류의 소설 읽기에서 새로운 것은 생성되지 않는다. 언뜻 보기에 이 작품(『82년생 김지영』)이 고발하는 여성 억압적 내용들은 매우 비판적이고 문제제기적이라고 읽히지만 그런 판단은 피상적이다. 고발의 내용들은 이미 알려진 사실들”이라며 “물론 그런 내용을 아직 모르고 있는 독자들에게 그 사실들을 더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고발문학, 경향문학의 기여점이다. 그러나 그런 양적인 측면이 한 작품이 지닌 질적인 가치를 담보하지는 못한다. 좋은 작품은 그 작품의 형식적, 내용적 낯섦으로 독자를 미지의 영역으로 끌고 간다”고 말한다.
이어 “작가는 정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인물과 사건을 통해 미지의 영역을 같이 탐구하는 동반자여야 한다. 탐구가 아니라 주장이 앞서는 작품이 좋은 소설이 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