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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신문 Jul 20. 2020

김봉곤 소설 ‘재현의 윤리’... 진짜 문제는 태도?


“실화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하지.”


김봉곤 작가의 소설 『그런 생활』에서 동성애 성향을 추궁하는 엄마에게 주인공인 ‘나’는 동성애를 인정하듯 답변한다. “소설이기도 하(다)”며 허구의 여지를 남기긴 하지만, 사실 소설 속 ‘나’는 동성애자이고, 그건 자전적 소설의 주인공인 작가 본인의 성적 취향과도 닮아 있다. 이처럼 소설 『그런 생활』에는 작가 본인과 주변인을 둘러싼 많은 ‘사실’이 담겼는데, 그중 일부가 윤리적 문제에 휘말렸다.


문제가 된 건 소설에 등장하는 C누나와의 대화 부분. 소설 속 C누나는 주인공에게 (성적인 내용을 포함해) 가감 없는 조언을 전하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지난 10일 자신을 C누나라고 주장하는 A씨가 트위터를 통해 “(소설 속) C누나의 말은 제가 김봉곤 작가에게 보낸 카카오톡을 단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겨 쓴 것”이라며 “김봉곤 작가와 저를 동시에 아는 사람들 모두가 작품 속 C누나가 저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대화 중 성적 수치심과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을 그대로 쓴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작가는 사과를 전하면서도 오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1일 트위터를 통해 “작품이 게재되기 전 (C누나에게) 원고를 보냈다. (C누나는) ‘어차피 네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이) 나(는) 아니니까 어떤 대사를 쳐도 상관없는데 더 참신한 거 없을까’라고 말했다. 주로 소설적 완성도를 거론했기에, 저는 수정 요청이 아닌 소설 전반에 대한 조언으로 이해했다”며 “(최초 출간[2019년 4월] 이후 1년이 지난 시점[지난 4월]에 다시 문제가 제기된 후) 즉각 사과하고 수정을 약속했다. 인용된 카톡 대화 내용을 모두 삭제한 수정본을 작성해 (지난 5월 6일) 문학동네와 창비에 수록작 수정을 요청했다. 이후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과 『시절과 기분』은 모두 수정본으로 발행됐다”고 해명했다.


다만 문제는 그런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서 A씨는 김 작가의 작품을 출간한 문학동네와 창비에 ‘원고 수정 후 수정사실을 공지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해당 출판사는 그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뒤늦게 해당 사안에 관심이 쏠리자 지난 14일 창비는 페이스북 공지를 통해 “(수정 사실을 출판사를 통해 공지하라고 요청한 A씨에게) ‘작가와 귀하의 의견교환과 협의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 합의 여부 및 내용에 따라서 당사도 추후 내부적으로 상의해 협조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답했고 이후 추가적인 요청이 전달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관련 내용을 정리해보면 출판사는 작가 요청에 따라 소설 내용을 수정했지만, 수정 공지에 대해서는 A씨가 직접 작가 동의를 받아오라고 요구한 것이다.


문학동네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학동네는 지난 14일 페이스북 공지를 통해 “당사자분들에게 충분한 조치가 되지 못한 점 깊이 사과드린다”며 “당사자(의 주장과 작가의 주장이 일치하지 않는 사안이어서 수정 사안에 대한 공지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김 작가가 동의하지 않아 수정 공지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듯 읽히는데, 이에 일각에선 ‘소설 내용이 수정됐음에도 이를 공지하지 않은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부정적 요인으로 작품 내용이 수정된 사실을 알리는 게 꺼려져 회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 작가와 젊은작가상을 공동수상해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작품(「연수」)을 수록한 장류진 작가 역시 SNS를 통해 “수정 사실을 왜 공지하지 않았는지 알고 싶다. 그 사실은 독자뿐 아니라 공저자인 다른 수상자들에게도 알려줬어야 했다”며 “문학동네의 대처에 실망과 아쉬움이 크다”고 밝혔다.


소설을 쓴다는 건 일상에서 수집한 글감을 바탕으로 누군가의 삶을 재현(창작)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선 재현의 윤리가 요구된다. 김수아 교수는 책 『모두를 위한 성평등 공부』에서 “재현하는 데에는 윤리적 고려가 필요하고 그래서 방식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타자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언제나 정치적인 행위이며, 타자를 자신의 올바름을 전시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전유하거나 활용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그런 점에서 김 작가와 출판사가 재현의 윤리를 간과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 작가와 출판사들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에는 사건을 최대한 조용히 넘기려는 모습이 엿보여 부정적 여론이 적잖은 상황이다. 한창훈 소설가는 책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에서 “중요한 것은 진심보다 태도”라며 자세를 강조했다. 엄지혜 작가 역시 책 『태도의 말들』에서 “‘내 진심 알잖아’라는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모른다. 태도로 읽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 그리고 출판사의 의도와 진심이 어떠했든, 겉으로 드러나는 건 태도다. 해당 사안을 두고 부정적 여론이 크게 일어난 건 그 태도가 바르지 못했다는 방증으로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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