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민음사)
사랑은 종종 예고 없이 시작된다. 한 사람의 손끝에 스친 미세한 떨림에서, 혹은 눈길 한 번이 남긴 파문에서도 시작된다. 또 어떤 사랑은 너무나도 뜨겁게 욕망의 불꽃처럼 사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랑의 순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게 어떤 형식이든 간에 그때가 내 것이라 믿는 순간, 이미 존재는 돌이킬 수 없는 무게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토마시가 테레자를 처음 마주했을 때가 그랬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한 장면을 떠올린다. 갈대 바구니 하나가 강물 위에 떠 있고 그 안에는 아직 세상을 알지 못하는 아기가 누워 있다. 그 이미지는 단순한 연약함의 상징이 아니라 어떤 결정의 순간이었다.
그녀는 송진으로 방수된 바구니에서 꺼내져 그의 침대 머리맡에 내려놓인 아기였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p15)
강물 위의 바구니는 우연히 눈앞에 나타난다. 누가 계획하거나 예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단 마주치면 모른 척할 수 없는 일이 된다. 건져 올릴 것인가, 아니면 다시 물결 속으로 밀어낼 것인가. 토마시는 그 선택 앞에 섰다. 그리고 끝내 그 바구니를 강으로 보내지 않는다.
테레자는 강물 위를 떠내려오던 그 바구니 속의 아기처럼 세상의 연약함을 온몸으로 품은 채 그에게 다가왔다. 그렇지만 토마시가 그녀를 다시 강물로 밀어낼 수 없었던 것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이거나 계산된 선택이라기보다는 토마시 스스로 깨어나는 어떤 순간이었다.
이 장면이 말해주는 사랑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열정과는 다르다. 그것은 누군가를 소유하려는 감정도 아니고 서로의 욕망이 불꽃처럼 맞부딪히는 순간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그러기에 사랑이란 어쩌면 어떤 연약함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랑은 때때로 보호의 형식을 갖추기도 한다.
하지만 토마시의 사랑이란 일상적인 연민과는 다르다. 쿤데라의 세계에서 연민은 타인의 나약함을 통해 오히려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토마시는 테레자에게서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뒤돌아 본다. 테레자의 불안과 두려움이 토마시의 세계를 서서히 잠식하지만 토마시는 그 안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무게’를 발견한다.
토마시는 오랫동안 가벼운 삶을 살아왔다. 여자와의 만남은 늘 가벼운 유희였고 건조한 관계였다. 철저히 자신만의 계산적 흐름을 유지했다. 사랑을 자유의 상실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레자를 만난 뒤 그의 세계에는 처음으로 어떤 존재의 무게가 생긴다. 그것은 무슨 대단한 운명의 무게가 아니라 작은 생명을 품에 안았을 때 느껴지는 조심스러운 무게다. 그러나 그 무게는 점점 책임의 형태로 굳어졌다. 테레자가 잠결에 몸을 떨 때 일어나는 작은 움직임, 희미한 한숨 하나가 그의 일상에 스며들며 삶의 리듬을 바꾸었다. 그렇게 그의 세계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가벼움 속에 머물 수 없게 돤다.
토마시의 사랑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사랑은 우리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의 실체를 드러내 주는 것이다. 토마시처럼 누군가를 다시 강물로 흘려보낼 수 없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사랑의 불가역성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되돌릴 수 없는 일이며 도덕이나 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토마시에게 테레자를 사랑하는 일이란 단지 자신을 위한 구원만이 아니라 자신을 살리는 의식이었다. 테레자를 다시 보내는 일은 곧 자신을 버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그녀 곁에 머물렀고 그 머묾 자체가 사랑이었다.
사랑은 삶을 가볍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한 삶은 나에게로 온 알 수 없는 무게를 감당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 무게가 때로 슬픔의 얼굴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슬픔이 있기에 인간은 비로소 인간으로 존재한다.
나는 아마도 그 감정, 그 슬픔에 가까운 어떤 무게가 바로 쿤데라가 말한 사랑의 무게라고 생각한다. 너무 가벼워서 바람처럼 흩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에서 그나마 내가 떠안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가치 있는 무게. 그것이 바로 사랑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사랑을 계속 꿈꾸는 이유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책이지만 쓰고 보니 중언부언이다. 그만큼 맘에 담아둔 말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