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형의 취향, 세계문학전집의 얼굴들.

by 리디언스



책마다 체온이 다르다. 무게, 질감, 종이의 냄새까지도 각각의 세계를 품고 있다. 어떤 책은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고, 어떤 책은 무심히 구겨 넣어도 부담이 없다. 특히 출판사별 세계문학전집은 각각의 정체성과 아우라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아 볼 때마다 흥미롭다.


제일 먼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고를 때도 부담이 없고 펼칠 때도 부담이 없다. 심지어 책이 접히거나 조금 찢어져도 놀라지 않는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 거칠게 다루어도 아깝지가 않다. 심지어 잊어버리면 ‘아, 또 사면되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다. 조금 못생긴 판형이지만 의외로 손에 감기듯 들고 읽기 편하다. 문학의 아메리카노라고나 할까. 늘 곁에 두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반대로 을유 세계문학전집은 그보다 훨씬 근엄하다. 표지 색깔부터 고급스럽고 품격이 묻어난다. 번잡하고 소음이 많은 곳보다는 음악이 흐르는 조용한 카페에 어울린다. 괜히 아무 자리에나 함부로 두면 안될 것 같다. 종이 질감이 좋아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전해지는 감촉이 좋다. 이 책을 손에 들면 왠지 자세가 반듯해진다. 스크래치라가 나면 마음이 상하고 만약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두고두고 마음이 아프다.


열린책들 세계문학은 색감부터 자유분방하다. 표지는 언제나 대담하고, 문체는 젊으며, 생기가 있다. 표지만 보아도 유럽의 예술 영화 포스터를 보는 듯하다. 혼잡한 전철보다는 인스타그램에 등장할 만한 세련된 카페의 테이블에 있을 때 더 빛나고 어울린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면 생각보다 깊고 진지하다. 아무튼 젊은 예술가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스타벅스의 요란한 메뉴와 함께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젊음의 외형 안에 성찰이 숨어 있는, 그런 모순이 열린책들의 매력이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은 우선 우아하다. 특히 양장본의 표지는 거의 예술품 수준이다. 책장에 줄 세워두면 공간이 한층 품위 있어진다. 오래된 나무 선반 위 또는 커피잔을 배경으로 두기만 해도 그 자체로 풍경이 된다. 책이라기보다 오브제로 생각해도 나름 괜찮다. 밝은 공간에도, 어두운 공간에도 모두 어울린다. 풍성한 스팀밀크가 우아하게 올라간 카푸치노 같다. 읽기 전부터 이미 마음이 가게 한다.


펭귄클래식은 한때 문학의 국제공통어였다. 페이퍼백 특유의 경쾌함과 자유로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합리적인 가격을 이점으로 화려한 시절을 보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못하다는 느낌이다. 어쩐지 세월의 먼지가 살짝 앉은 느낌이다. 나도 언젠가부터 책을 고를 때 펭귄을 후순위로 미루곤 한다. 그러나 무리한 변화 대신, 한결같이 그 자리에 서 있는 태도야말로 펭귄의 품격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창비세계문학은 늘 진지하다. 독특한 컬러의 표지들은 가지고 다니기엔 조금 부담스럽지만, 무게감 있는 그 진중함을 담은 디자인이 오히려 이 전집의 아름다움이다. 이 책을 들고 다니면 왠지 고상한 토론 자리라도 마련해야 할 것 같고, 다 읽고 나면 반드시 서평을 몇 줄이라도 써야만 할 것 같다. 유행보다 진심에 더 가까운 책이다. 창비의 책들은 여전히 시대정신과 문학의 도덕심을 지키고 있는 것 같고, 책을 덮고 나면 왠지 세상이 조금은 단정해져야 할 것만 같다.


책 한 권을 고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하루를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고르는 일과 닮아 있다. 문학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고, 내가 무심히 고른 책은 나도 모르게 나의 취향을 말하고 드러낸다. 그렇다고 뭐 너무 진지할 건 없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겠나. 나는 그저 이 세상에 읽을 수 있는 책이 이렇게 많다는 것만 생각해도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좋을 뿐이다. 그게 전부다. 이 아름답고 끝없이 영원할, 책의 세상 속을 천천히 거닐 뿐이다.


덧) 그냥 순전히 내 생각을 재미로 쓴 글입니다. 읽으며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시길. 각자의 출판사별 평가와 생각들이 따로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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