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의 커피 - 심장이 두 개인 큰 강
<심장이 두 개인 큰 강> (어니스트 헤밍웨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작품 속에 커피를 언급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를 들어 <노인과 바다>에서 청새치와의 사투로 지친 노인에게 소년이 깡통에 담아온 것이 바로 커피였고,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에서는 마리아가 조던에게 “당신이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를 가져다 드릴게요”라며 속삭인다. 특히 단편 소설 <심장이 두 개인 큰 강>에는 커피를 끓이는 장면이 아주 자세히 묘사된다.
<심장이 두 개인 큰 강>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라고 불평했다고 한다. 그만큼 내용이 심심하다는 뜻이다. 헤밍웨이 자신은 이 작품에 대해 “전쟁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한 청년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면서 “전쟁이며 전쟁에 관한 모든 언급이며 전쟁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지 모든 것이 생략되어 있다”라고 밝혔다.
헤밍웨이가 말 한대로 참전 후 귀향한 주인공 닉은(소설에서는 닉에 대한 정보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참전 전 낚시를 하던 강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자연 속에서 홀로 낚시를 하며 야영을 한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말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닉의 심리 묘사조차 별다른 게 없다. 오로지 걷고 천막을 치고 음식과 커피를 만들어 먹고 메뚜기를 잡아 미끼를 만들어 송어 낚시를 할 뿐이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이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커피를 끓이는 장면은 묘사는 독자가 마치 닉의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생생하며 사실적이다.
닉은 나무에 큰 못을 또 하나 박고 물이 가득 찬 양동이를 매달아 놓았다. 주전자에 물을 반쯤 넣고 그릴 아래에 나무토막을 더 넣은 뒤 주전자를 올려놓았다. 어떤 방법으로 커피를 끓여야 할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 일로 홉킨스와 논쟁한 적이 있었지만 어느 방법에 찬성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물이 끓게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이것이 홉킨스가 하던 방법이었다는 게 떠올랐다. 한때 그는 모든 일에 관해 홉킨스와 논쟁을 했다. (중략)
닉이 지켜보는 동안 커피가 끓었다. 뚜껑이 위로 올라오면서 커피와 찌꺼기가 주전자 옆으로 흘러내렸다. 닉은 그릴에서 주전자를 내렸다. 홉킨스가 승리를 거둔 셈이었다. 살구를 담았던 빈 컵에 설탕을 넣고 커피를 조금 따라 식혔다. (중략)
닉이 홉킨스 방식으로 끓인 커피를 마셨다. 쓴맛이 났다. 닉은 소리를 내어 껄껄 웃었다. 이야기의 결말치고는 괜찮았다.’ (헤밍웨이 단편선 2, 심장이 두 개인 큰 강, 민음사)
이전에 닉은 친구 홉킨스와 커피를 끓이는 방식 문제로 논쟁을 벌였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방식을 버리고 홉킨스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홉킨스 방식은 분쇄한 커피를 물에 넣고 직접 끓여서 우려 마시는, 오래전부터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 이용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중동 지역, 특히 터키에서 유래한 일명 ‘터키쉬(Turkish) 커피’다. 터키에서는 ‘체즈베(Cezve)’라고 부르는 조그만 금속 용기에 커피를 갈아 담고 물을 넣어 끓인다. 이런 방식으로 추출한 커피는 닉도 느꼈듯이 당연히 쓴맛이 강하다. 그러므로 보통 기호에 따라 커피와 함께 설탕을 넣어 끓이거나 닉처럼 커피를 끓인 후에 설탕을 넣어 마시기도 한다. 다양한 기구를 이용한 추출 방법이 개발된 지금은 대중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방식이다. 하지만 터키를 비롯한 중동 지역이나 에티오피아 등의 지역에서는 현재도 이 방식으로 끓여 먹는 사람이 많다. 이 지역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하다.
서부영화에서 주인공이 황야에서 노숙하는 씬에서는 여지없이 이런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니까 소설 속 시대의 관점에서 본다 하더라도 매우 전통적 방법이었던 셈이다. 아울러 우리가 평소 무심코 사용하는 ‘커피를 끓인다’라는 관습적인 표현 역시 이런 방식에서 비롯된 말일 것이다.
너무 뜨거워 그대로는 붓지 못하고 모자를 사용해 주전자 손잡이를 잡았다. 컵을 주전자 안에 담그고 싶지는 않았다. 첫 잔부터 말이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홉킨스 방식으로 해야 했다. 홉킨스라면 이 정도 대접은 해 줘야 한다. 아주 진지하게 커피를 마시는 녀석이었으니까.’ (심장이 두 개인 큰 강, 33p)
커피를 따를 때조차 닉은 철저하게 홉킨스 방식을 택한다. 홉킨스가 잔을 주전자에 넣어 커피를 덜어내지 않고 직접 잔에 따라 ‘진지하게’ 커피를 마시듯이 말이다. 닉이 친구 홉킨스의 방식을 택한 건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전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커피를 끓이는 행위는 닉의 삶이 전쟁 전과 후로 나뉘었음을, 비로소 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음을 알려주는 메타포이기 때문이다. 그 매개체가 말하자면 커피다.
언젠가는 움츠려야 했던 야외 활동도 곧 가능해지리라 믿는다. 그럴 때 커피 애호가라면 한 번쯤 닉의 방식대로 끓여 마셔보길 권한다. 커피 가루를 넣고 끓일 수 있는 용기만 준비되어 있으면 언제든 가능한 방법이다. 물론 취사가 가능한 곳이어야겠지만 말이다. 커피를 미리 곱게 갈아 준비한다면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주전자 등에 준비한 커피를 넣고 물을 부어 끓이기만 하면 된다. 커피의 색다른 풍미와 낭만을 동시에 접할 수 있는 멋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