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봄, 나의 봄, 우리의 봄!
띵동,
‘금요일에 회장선거. 나올 사람 부모님과 상의 해 보고 오기’ 학부모용 학급 앱에 공지가 올라왔다. 새학기의 꽃은 임원선출이 아니던가, 소극적인 어린 시절엔 써보지 못한 감투의 한을 대학교, 어린이집 학부모 대표 등을 맡아 아직까지도 풀고 있는 나는 공지를 보자마자 묘한 설렘을 느끼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태권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얘기를 꺼낸다.
"엄마! 내일 학교 회장 선거야. 나 나가도 되지?"
설렘도 잠시 아이의 일엔 뭐든 조심스러워진다. 무엇이든 도전하고 경험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 반,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생기니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반. 유난히 승부욕이 많아 보드 게임 중에도 지는 순간 눈물을 쏟아내는 아이가 선거에 나간다고 하니 괜한 걱정이 먼저 떠올라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회장이 되지 않아도 울지 않을 수 있을지 잘 생각해 보자."
확신에 찬 아이는 공약 연설문을 부지런히 쓰기 시작한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배려하는 회장이 되고 싶다는 아이는 건강하고 행복한 교실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로 글을 마쳤다. 밤새 잠을 설친 듯 일찍 일어나 서둘러 등교를 한 아이를 보내고 오전 내내 걱정으로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바라던 뜻대로 선출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아이가 받을 상처가 걱정이었다.
‘삐삐비비비빅,삐비삑-'
집으로 돌아온 아이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당선이 되지 못한 아이는 신발을 벗자마자 내 품에 안겼다. 말없이 아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아이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첫 선거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주었다. 아이의 반은 총15명, 감기로 1명은 등교하지 않았고 금요일 등교한 14명의 아이 중 9명이 후보로 나왔다. 9명은 각자 자신을 뽑았다. 남은 5표로 당선 여부가 결정되는 선거였다. 1표 차이로 아쉽게 선출되지 않은 아이는 아쉬움에 울고 싶었지만 울음은 꾹 참았다고 한다.
"괜찮아, 엄마. 그래도 친한 친구가 뽑혀서 괜찮아.. 나 2학기때 또 나갈거야."
우리는 10년 전 3월 혜화동의 한 병원에서 봄인사를 나눴다. 또래보다 일찍 결혼을 한 탓에 출산 정보가 전무했던 나는 진통이 진행된 줄도 모르고 출산 예정일을 4일 앞둔 약속된 정기 검진 날짜에 맞춰 병원에 갔다. 이리 저리 내 몸을 살핀 의사선생님께서 당장 분만실로 가자고 하실 때까지도 멀쩡하게 두 발로 걸어 올라가며 친구와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돌렸다. 이미 60%정도 진행된 진통은 2시간만에 짧고 굵게 마침표를 찍었고, 분만실 도착 2시간만에 나는 새로운 봄을 만났다. 3월만 되면 영웅담처럼 늘어 놓는 첫 출산 이야기다.
작년까지도 아기처럼 느껴지던 아이가 10살이 되더니 공기부터 달라졌다. 내 안에 곱게 품었던 씨앗은 이미 새싹이 되어 바지런히 자라고 있었다. 이제 자신만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더 큰 화분으로 옮겨줄 때가 되었다. 아이는 이미 아이만의 세상으로 첫 걸음을 내딛을 준비를 마친듯 하다.
회장 선거 다음날인 토요일 오후, 온 가족이 함께 산책길에 나섰다. 며칠 후에 있을 생일을 앞두고 할아버지께서 첫 자전거를 사주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아이는 옥색의 빛이 고운 자전거를 골랐다. 처음으로 두발 자전거에 올라탄 아이는 몇 번을 휘청거리더니 곧 제대로 페달을 밟기 시작하였다. 내 앞에서 저만큼 멀어진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아이의 봄은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양력 3월5일 오늘은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도 봄이 온 걸 알고 펄쩍 뛰어오른다는 경칩이다. 포근하면서도 단단한 땅 아래에서 잔뜩 몸을 웅크리다 봄과 함께 기지개를 활짝 펼 만물의 모습을 상상하니 걱정과 두려움보다는 하루하루 생기 넘칠 봄날에 대한 기대로 기쁨이 앞선다.
첫 출산의 기억, 첫 인사, 첫 선거, 첫 도전, 첫 자전거.. 차곡차곡 쌓인 우리의 첫 경험들이 마치 봄의 시작을 알리는 듯 마음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뭐해? 어서 일어나! 우리 함께 봄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