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천천히 읽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낭독 녹음, 필사, 그리고 단상까지 기록을 한 후 다음으로 넘어간다. 1월부터 참여하고 있는 책 모임의 7,8월 계획안 과제들이다. 6월 말쯤, 이 계획안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이었지만 나는 스스로가 여름에 얼마나 취약한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물론 그동안 나름의 패턴이 잘 자리 잡고 있었지만 여름 앞에선 장사가 없었다. 슬슬 흐트러질 조짐이 보였다. 나에겐 약간의 강제성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 나는 여름에 한없이 약해진다.
올여름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했다. 10년 만의 여름 여행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전업주부에게 여행은 집안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던가?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에게 여름은 휴식처럼 다가왔다. 안타깝게도 나는 휴식을 누리지 못한 축에 속했다. 숙소에서도 매일 아침 물티슈를 들고 이곳저곳을 닦아냈다. 좁은 공간에서 더 눈에 띄는 널브러진 짐들을 수시로 정리했다. 세끼를 모두 밖에서 해결할 수 없기에 미리 준비해 온 식재료들을 내어 놓고, 다시 치우는 일도 내 몫이었다. 가장 손이 많이 갔던 건 빨래였다. 매일같이 물놀이를 했던 아이들의 수영복, 젖은 수건(심지어 크기도 크고 두꺼운), 숲과 오름을 오가며 땀에 축축해진 옷까지.. 하루만 두어도 냄새가 폴폴 올라오는 이 빨래 더미를 외면할 수 없었다. 매일 저녁 숙소의 세탁실로 가 집에서 챙겨 온 세제를 넣고 빨래를 몽땅 집어넣었다. 다시 꺼내 베란다에 널어 두는 일까지, 서울에서 제주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 내 일상은 어째 비슷하게 흘러 가는 듯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하고 싶어서 했으니까, ‘여행’이라는 단어 하나만 더했을 뿐인데 여름은 나에게 기쁨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13박 14일의 여행 마지막 밤, 하울이는 아쉬움에 울다 잠이 들었다. 출발 전부터 협조적이지 않던 온세도 이런 기회가 쉽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점점 여행을 즐겼다. 물리적인 위치만 달라졌을 뿐인데, 익숙했던 일상과 관계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는 듯한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좋았다. 소문난 핫 플레이스는 한 곳도 가보지 못했다. 날씨에 기대어 바다로, 숲으로, 오름으로 자연 속에 푹 빠져 서로의 뜨끈한 살만 비비며 지냈다. 내 등은 늘 땀으로 축축했지만 이따금씩 옷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 덕에 다시 말릴 수 있었다. 남편은 밤마다 햇빛에 벗겨진 피부를 진정시키기 바빴지만 다음 날이 되면 다시 바다로 뛰쳐나갔다. 하루가 다르게 노릇노릇해진 아이들의 얼굴은 오히려 더 건강해 보여 다행이었다. 우리는 여름이라는 계절에 만날 수 있는 모든 순간을 누렸다. 긴 여행 동안 각자의 마음에 각각의 여름 풍경을 품었다. 아이들과 남편에겐 바다가, 나에겐 숲이 여름이었다.
낭만적인 여름은 막이 내렸다. 다시 비낭만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 주는 안도감도 잠시, 나는 예상치 못한 일에 부딪혔다. 도시가스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겨울도 아닌데 뭐 어때, 얼마나 불편하겠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했지만 작은 일에도 크게 요동치는 내 신경은 온통 문제를 향해 있었다. 처음엔 가스레인지만 고장 났다고 생각했는데 보일러에서도 에러코드가 뜨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검색을 해 보니 가스 공급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거액 납세자는 아니지만 자칭 성실 납세자라고 할 정도로 꼬박꼬박 요금도 냈는데.. 가스가 왜 끊긴 거지? 고민을 이어갈 틈도 없이 엄마 배고파… 하는 아이들의 말에 일단 새 밥을 짓고, 냉동고 속의 소시지를 꺼내 전자레인지로 익혀 아이들에게 건넸다. 휴일이라 연결될 리 없는 고객센터에 연신 전화를 걸고 한숨만 푹푹, 이게 다 여름이라 그래.. 얼마 전에 서울에 비가 많이 왔지! 그때 고장 난 거 아냐? 오랜 시간 집을 비운 탓에 언제 고장 났는지도 모르는 걸 붙잡고 있어야 하다니. 도움도 안 되는 괜한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려 하는 걸 꾸욱 삼켰다. 냉동실의 얼음을 한가득 꺼내 500ml의 컵에 담았다. 정수기의 냉수 버튼을 눌러 컵이 찰랑거리도록 물을 받았다. 이가 시릴 정도로 얼음이 가득한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 식탁에 털썩 앉았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바꿀 수 없는 상황 앞에선 내 마음을 바꾸는 편이 낫다. 월요일의 나에게 일을 미루고 쉬기로 했다. 일단 점심 준비는 중국집에 전화를 하는 걸로 대신했다. 짜장면을 먹자마자 밀려오는 피곤함에 나도 모르게 오래간만에 긴 낮잠에 빠졌다. 한참을 정신없이 자고 있는데 친정 엄마의 전화가 왔다. 저녁으로 콩국수를 하려 하니 같이 먹자는 이야기였다. ‘엄마, 우리 점심에도 면 먹었어. 안 갈래’ 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그럼 김치찌개 해 줄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섬주섬 일어나 아이들을 챙기고 서울 어디에서나 팔지만 제주도에서 사 온 귤 한 박스를 들고 친정으로 내려갔다. 배부른 저녁을 먹었다. 따뜻한 물로 아이들 목욕도 마쳤다. 집에 다시 돌아가려 하니 엄마는 김치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다. 상추, 가지, 오이, 감자, 콩, 토마토, 블루베리 등 가평 집에서 수확해 온 여름 식재료에 엄마가 만든 밑반찬까지. 2주 동안 실컷 놀고먹고 엄마 몫으로 고작 귤 한 박스를 들고 온 손이 부끄러웠지만 시댁에 드릴 야채까지 야무지게 챙겨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이들을 재우고 찬물로 샤워를 하기로 결심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숨이 절로 막히고 입에선 ‘헉’ 소리가 날 만큼 차가운 물이 머리부터 어깨로, 팔로, 배로, 다리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쯤이면 다행이다. 여름이니까.
월요일 아침 9시가 되자마자 도시가스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오전에 기사님께서 찾아와 주셨고 계량기를 바꾸는 걸로 문제는 해결되었다. 점심엔 밖으로 나가 동네에 사는 오랜 친구를 만났다. 정원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깔깔거리며 대화를 나눴다. 밤에는 내가 좋아하는 산책로를 걸었다. 덥진 않았지만 습한 공기로 제법 땀을 흘린 나는 온수로 샤워를 했다. 어느 여름과 다름없었다.
회사, 학교, 어린이집에 자리가 있는 가족들의 일상 복귀는 어렵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여전히 어딘가를 동동 떠다니는 사람 같았다. 할 일은 있는데 하고 싶지 않았다. 선풍기 앞에 가만히 누워 핸드폰만 보다 몸을 일으키는데 3시간이 걸렸다. 이런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한 건 매주 월요일 제출해야 했던 책 모임의 과제였다. 이미 늦은 마감이었다. 나의 게으름 때문임을 인정하며 책상 앞에 앉았다. 여행 내내 들고 다녔던 책이지만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책을 읽었다. 필사를 하고, 녹음을 했다. 천천히 단상을 썼다. 단톡방에 과제를 공유하고 나니 비로소 편안함이 느껴졌다.
나는 모든 계절을 사랑하지 않는다. ‘여름’이라는 계절을 떠올리면 기쁨보다는 슬픔이 먼저 느껴진다. 이 슬픔은 눈물 나는 애잔한 것이 아니다. 나에게 여름 안의 슬픔이란 덥고, 습하고, 축축한데 쩍쩍 달라붙기까지 하는 감정이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함의 총합이다. 눈앞의 여름을 바꿀 수 없다면, 슬픔보다 기쁨을 먼저 떠올려보면 어떨까? 한바탕 무더위가 지나간 후 해 질 녘의 건조한 바람, 쨍한 햇살 속 바짝 말라가는 빨래, 비 온 뒤의 촉촉한 나무와 풀들의 싱그러움, 땀에 젖은 몸을 씻고 난 후의 개운함, 선풍기 바람의 나른함, 얼음 가득한 커피, 에어컨 빵빵한 카페에서 읽는 소설, 시원한 생맥주, 밤 산책을 하며 나누는 대화 그리고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여름 과일과 감자, 옥수수까지! 여름을 사랑하진 않지만 늘 밉기만 한 것도 아니다. 여름이 주는 기쁨과 슬픔에 온전히 빠져 보자. 어차피 여름은 지나가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