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후 꽤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현재와 다를 바 없는 여성의 삶을 세밀하게 그린 책을 만났다. 아니 에르노의 <얼어붙은 여자>다. ‘어린 여자아이가 어른 여자가 되고,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는 과정’을 읽는 내내 궁금했다. 타고난 ‘성’이야 선택 불가능한 영역이지만 ‘얼어붙은’ ‘여성’으로서의 삶은 여전히 바꿀 수 없는 건지.
또래보다 일찍 결혼한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확실한 이해도 간접 경험도 없었다. 어떤 예행연습도 없이 뛰어든 결혼 후의 삶은 임신 출산으로 인해 시작부터 선택의 연속이었다. 처음엔 내 의지에 따라 삶의 방향 정도는 쉽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답은 늘 같은 곳을 향해야 했다. 내가 아닌 아이들과 가족을 위한 쪽으로.
p.213 나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도 사라진 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차이점은 그럼에도 그의 삶은 앞을 향해 가고 있고 내 삶은 점점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 내 직장은 휴직, 복직 제도가 없는 곳이었다.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일을 그만두는 쪽은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는 사람이 일을 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사회에서 내 이름은 사라졌고 남편의 이름은 점점 진해졌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상황은 점점 불공평하게 흘러갔다. 그저 ‘버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에게 주어진 일들은 모두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을 살피고 종일 집안일을 하고, 1년에 6번 제사를 지내고 그 밖에 집안의 크고 작은 일까지 모두 내 몫이 되었다. 왜 내가 하냐고? 나에게 모든 짐을 넘긴 그들은 내 앞에서 이런 말을 내뱉었다.
‘우리 집에서 시간 제일 많은 사람이 쟤야.’
‘결혼은 무엇을 의미했던가’, ‘맥 빠진 만족감’을 가지고 ‘세상과 미래로부터 나를 고립시키는 무게감’을 감수하며 ‘투덜거리며 내려가는 계단의 이야기’를 계속 써야 하는 걸까.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결혼은 나의 선택이었다. 출산 또한 남편과 내가 함께 결정한 일이었다. 아이를 낳고도 일을 하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었겠지만 ‘전업 주부’의 길을 선택한 것도 바로 내 의지였다. ‘여성’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내 선택을 모두 부정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모두 나의 선택이었음을 왜 자꾸 잊고 살았던 걸까.
내가 선택한 나의 삶에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투덜거리며 내려가는 계단의 이야기’는 나와 맞지 않는다. 매일같이 읽고 쓰지만 ‘벌지 않는’ 일들로 꽉 채운 내 일상에도 충분한 가치를 부여해주고 싶었다. ‘여성’으로서의 삶이 버겁게만 느껴지는 날엔 더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썼다. 그러는 사이 ‘나’라는 사람이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비로소 남편의 ‘버는’ 일과 나의 ‘벌지 않는’ 일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내 딸이 살아갈 여성의 삶을 상상해 본다. ‘우리 딸은 엄마처럼 살지 마.’하는 이야기는 부모님 세대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고 살았다. 세상은 급변하지만 변치 않는 난제들이 있다. 여성이라서 당연하게 치부되는 고민들을 내 딸은 겪지 않길, 스스로 선택한 이름 속에서 자신만의 힘을 가진 여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주체적인 선택을 하며 나와 너, 우리가 함께 평등한 삶을 사는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