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들
어제는 외면했지만 오늘은 마주한 그 얼굴.
식재료를 가득 채운 쇼핑 카트를 밀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유리문 하나 열고 나왔을 뿐인데 숨이 턱 막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냉기로 닭살이 돋아있던 팔뚝이 금세 끈적해졌다. 자동차 트렁크를 열고 식재료들을 부지런히 옮겼다. 입구에서 먼 곳에 주차를 한 탓에 카트를 다시 가져다 놓으려면 보관소까지는 좀 걸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모른 척 주차장 기둥 뒤에 카트를 두고 돌아설까 하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지정된 보관소에 가져다 두었다. 짐을 싣고 카트를 다시 가져다 놓느라 주차장에 머문 시간은 대략 10~15분 남짓, 등에선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서둘러 차에 올라타 시동을 켰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시리도록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셨다.
폭염 주의보 속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 4만 3천보를 걸으며 일하던 30대 마트 노동자가 사망한 기사를 며칠 후 뒤늦게 보았다. ‘더위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오지 않는다. <날씨와 얼굴, 71쪽, 이슬아>’는 책 속 구절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올해 여름 날씨를 예상하며 봄부터 관련 기사가 나왔다. 7, 8월 두 달 내내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도 있었고, 엄청난 폭염을 예상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심상치 않은 징후들이 내 눈에도 띄었다. 동시다발적으로 피어나는 봄꽃들을 반가워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으니까.
예보만 나왔을 뿐 이렇다 할 실질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야외 노동자들은 충분한 수분 섭취와 수시로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 혹은 ‘폭우로 지하에 물이 차오르면 위층 주인집으로 잠시 대피하라’는 누구도 하지 않을 이야기들이 대비책으로 마련되었다. 그러는 사이 체감 온도 35도가 훌쩍 넘는 마트 주차장에서, 그리고 순식간에 불어난 물이 넘치는 지하에서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폭염도, 홍수, 한파도 내 삶에 약간의 불편함은 주지만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더우면 에어컨 켜면 되지, 우리 동네는 고지대니까 집 안에 물이 차오를 일은 없지, 한파 좀 오면 어때, 겨울은 추워야지. 내 일상은 크게 변하진 않았으니 딱히 와닿지 않는 먼일이라고 여겼다. 실효성 없는 대책들만 내놓는 그 사람들을 비웃었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해가 지날수록 여름은 점점 더 더워지고, 겨울은 더 추워질 것이다. 비는 수시로 올 것이고, 폭우도 점점 잦아질 것이다.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을 보고 ‘기후 세대’라고 부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가올 기후 재난의 본격적인 피해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어느새 기후 재난이 일상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피할 새도 없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음 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 아니 기후 재난 앞에서 난 무엇부터 할 수 있을까.
‘여름이 더욱 더워진다. 덥다는 말을 예전엔 별생각 없이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너무 많은 얼굴이 떠오르고 만다. 뙤약볕에서 농사 지어 작물을 보내주는 외할머니, 트럭 몰고 다니며 사시사철 야외에서 일했던 아빠, 여름에 더 많이 소비되는 축산 현장의 닭들, 폭염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기후 난민들..., 내 더위의 무게와 그들 더위의 무게는 다르다. 더위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오지 않는다. <날씨와 얼굴, 71쪽, 이슬아>’
애써 모른 척 외면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공평하지 않은 더위의 무게를 떠올리면 불편한 마음이 먼저 들곤 하지만 그 불편한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얼굴들을 떠올렸다. 글을 쓰는 내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시원한 거실 바닥에 앉아 키보드나 두드리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 힘없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아니 이런 글 한 편을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은 마음이 자꾸 올라왔다. 보통의 목소리라도 계속해서 울려퍼진다면 내가 그랬든 누군가의 세계도 조금은 달라질까. 계속 쓰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짐했다.
‘모두가 버리지만 모두가 치우지 않는 세계에서 어떻게든 해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쓰레기가 잠깐이 아니라는 걸 똑바로 보는 부모와 자식과 자신의 자식과 노동자와 옷가게 주인과 소설가와 시인과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당신이 있다. 우리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많은 생이 스며드는지. <날씨와 얼굴, 148쪽, 이슬아>’
어제는 모른척했지만 오늘은 마주한 그 얼굴들을 위해.
*이 글은 제가 참여하고 있는 계절 글방 #미루글방에서 쓴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