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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글 Aug 11. 2023

어디에나 열매는 있다.

오늘도 이렇게 열매 한 알.

  '쓰는 일'이란 참 신기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제 발로 마감의 길에 들어섰다. 자체 마감을 앞두고 머릿속으로 내내 글감을 떠올리고, 조금씩 여백을 채워가고, 공개적인 공간에 글을 올리기 전까지 이미 마침표 찍은 글을 반복해서 읽고 고치는 일을 반복한다. 언제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을 일, 하지만 나는 계속 쓰고 싶다.  

 

 부모님께서 친한 친구분과 함께 가평의 작은 땅을 사고 주말 농사를 시작한 건 2017년의 일이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도 부모님은 이랑 두 개 정도의 텃밭을 얻어 작은 농사를 짓곤 했으나 거리가 멀었고, 딱히 오래 머무르며 작물들을 돌볼 여건이 되지 않아 1~2년 정도밖에 유지할 수 없었다.      


 일주일 중 6일은 일을 하고 겨우 일요일에만 쉬는 부모님께서 덜컥 경기도 가평 작은 마을의 땅을 샀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울집의 대출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마침 동생도 결혼 준비 중이었으니 그만큼의 대출이 늘어날 터, 내 입장에선 돈걱정이 우선이었다. 그럼에도 더 나이 들기 전에 농사 한 번 지어보고 싶다며 땅을 사는 그 마음을 어찌 말릴 수 있을까.

      

 간단한 수도 시설만 설치해 두고 시작했던 텃밭에 직사각 상자 컨테이너를 들였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는 작은 컨테이너 하우스를 짓겠다고 하였다. 벽돌집으로 위장한 컨테이너 하우스였지만 집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할 즈음에서야 나도 한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평집을 오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안전한 잔디 마당이 있었고, 아이들의 이름이 하나씩 달린 사과나무도 있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화단에 있던 꽃들도 하나 둘 아빠의 텃밭으로 옮겨오기 시작하더니 마지막엔 그 무거운 할머니의 맷돌과 물확까지 마당 한편에 자리 잡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시골 같은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 나도 내심 반가웠다.     


 말이 주말 농사였지 부모님께서는 차차 서울의 본업을 줄여야 했다. 그래봤자 격주로 주 5일제를 하는 정도였지만 텃밭 일이라는 게 손이 많이 가니 토요일 밤보다는 금요일 밤에 텃밭에 가는 편이 나았다. 비가 너무 오지 않거나, 날이 좋지 않을 땐 일을 하다 말고 텃밭에 다녀오기도 했다. 처음엔 나야 농사일을 알 리가 없으니 물만 적당히 잘 주면 좋은 땅 위에선 저절로 자라는 게 농작물이라 생각하고 평일에 굳이 달려갈 일이 있을까 싶은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식재료 중 어느 하나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는 것을.

     

 겨우내 단단히 얼어있던 땅이 녹기 시작하면 그 해의 농사가 시작된다. 부모님께서는 보통 2월경 텃밭일을 시작하는데 가장 먼저 일렬로 밭을 다지고, 퇴비 같은 것을 미리 뿌려둔다. 꽃샘추위까지 모두 끝난 봄이 오면 그때부터는 매주 모종 가게에 다녀오기 바쁘다. 한 번에 몽땅 심어두는 줄 알았더니 농작물의 종류마다 심는 시기와 방법이 조금씩 달랐다. 상추나 열무, 시금치는 한편에 씨로 뿌려두었고, 고추나 가지, 토마토 같은 것들은 모종을 사다 심었다. 그 밖에도 옥수수, 가지, 감자, 고구마, 호박, 대파 같은 야채들과 블루베리, 사과, 포도, 배 등의 과일까지. 부모님의 텃밭엔 없는 게 없을 정도로 1년 치 농사가 빼곡하게 이루어진다.

       

 규모가 작다고 해서 손이 덜 가는 건 절대 아니다. 2,3일 정도 텃밭에서 생활하는 동안엔 종일 일을 해도 시간이 모자라다고 한다. 해뜨기 전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고 해가 모두 진 후에야 일이 끝난다. 삼시 세 끼라도 누가 차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는 그 와중에 밥때가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밥상까지 차려야 한다. 흙투성이 손으로 종일 밭일을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이게 정말 기쁨일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빠에겐 기쁨이 맞다. 일 하는 시간보다 술 마시는 시간이 더 길다.)


 얼마 전, 아이들의 여름 방학을 맞아 오랜만에 가평집에 다녀왔다. 더위를 잘 타는 난 에어컨도 없는 그곳에서 이틀 밤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가기도 전부터 걱정이 되었지만 여름이면 아이들 수영장부터 꺼낼 생각을 하는 아빠가 떠올라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온갖 열매로 가득한 여름 텃밭. 와, 이쁘다! 소리를 연발하며 사진 찍으러 다니는 것! 까지만 하고 싶었다. 나도.      


 작고 동그란 보라색 블루베리 열매를 딸 때까지만 해도 마치 농장 체험에 온 듯 즐거웠다. 작은 소쿠리를 채워가는 기쁨도 컸고, 하나 따고 하나 맛보는 재미도 컸다. 블루베리 한 소쿠리를 채워 놓고 잠시 쉬려는 찰나 밖에서 내내 잡초들을 뽑던 엄마가 또 나를 호출했다.

 

 "은아야! 상추도 따야지"

 "은아야? 오이랑 고추 좀 따봐"

 "은아야, 믹스 커피 마실래?(믹스커피 타오라는 말씀..)"


텃밭의 열매들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내려가고, 이제 좀 쉴까 하는데 엄마가 지금부터는 빨간 고추를 씻자고 한다. 지금 수확한 빨간 고추들은 꼭지를 따고 한 4~5번 깨끗하게 씻은 후 한 곳에 펼쳐 모아두었다. 자연풍으로 조금 말리다 서울에 올라갈 때쯤 창고의 건조기에 넣는다고 한다. 모든 고추들을 말리고 나면 그 후에나 방앗간에 맡긴다. 엄마와 나는 마당 수돗가에 쭈그리고 앉아 기계처럼 고추들을 씻고 또 씻었다.


"고구마순은 내일 다듬어야겠네."

 엄마는 주말 농사까지 짓게 되며 일주일 중 7일을 일 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래도 좋단다. 평일이면 농작물들을 살필 생각에 금요일만 기다린다고 한다. 부모님의 손길덕에 맺은 열매인데 저절로 자란 열매 대하듯 텃밭의 열매들을 칭찬한다. 엄마는 자식 키우며 느끼지 못했던 보람을 텃밭에서 느끼는 건가..     


 부업 농사꾼의 열매는 전문 농부들처럼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지 못한다. 수시로 들여다보지 못하기 때문에 너무 익어 혼자 떨어지는 열매가 태반이고 그나마 제때 수확하더라도 크기나 모양이 모두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그 많은 열매 중 가장 예쁘고 잘 익은 것들만 골라 나에게 준다. 호박 농사가 신통치 않아 단호박이 딱 하나 열렸는데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잊지 말고 꼭 따가라고 몇 번을 말한다.


 태풍을 앞두고 부모님은 일을 하다 말고 미리 텃밭을 살피기 위해 가평집에 다녀왔다고 하신다. 며칠 전 글방 모임을 마친 나는 틈만 나면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고치고 또 고친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애써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다 보니 어딘지 내가 글을 쓰는 모습과도 닮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의 울퉁불퉁한 열매들오늘따라 더 애틋하 느껴진다.



#이 글은 제가 참여하고 있는 계절 글방, #여름글방 #미루글방 에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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