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에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 로이스 로리의 <그 여름의 끝>을 읽고.
어느 날 꿈에서 두 번의 상실을 마주했다. 첫 번째 꿈은 아빠의 죽음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내 울고 있었다. 입을 꾹 다물고 흐느끼느라 나도 모르게 잠결에 얼굴에 힘을 줬는지 안면 근육의 움직임 때문에 잠에서 깨어날 정도였다. 두 번째 꿈에선 아이를 잃어버렸다. 어딘가에 아이를 놓고 홀로 버스를 탄 것 같았다. 기사님께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버스를 멈춰달라 사정했지만 야속하게도 버스는 멈추지 않고 앞을 향해 달렸다. 발만 동동 굴렀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하룻밤 사이에 꾼 꿈이었다. 그날은 잠들기 전까지 로이스 로리의 <그 여름의 끝>을 읽었던 날이다.
여름에는 상실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서늘한 공기가 감도는 계절엔 잃은 게 없어도 괜히 마음이 공허해지기 마련이지만 이미 모든 것이 넘치는 계절인 탓일까, 여름엔 그런 감정을 느낀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상실’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운이 좋으면 겪지 않고, 운이 나빠야 겪는 그런 일이 아니다. 사는 동안 누구나 여러 번의 상실을 겪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책 속에서 나는 여러 형태의 상실을 목격했다. 부모는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동생은 하나밖에 없는 언니를 잃었다. 누군가는 평생의 반려자로 함께 살았던 부인을 먼저 보내고 덤덤히 살아가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의 위험한 상황을 떠올리며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떠올리고 있었다.
p.157 또다시 어느 지나간 여름에 들었던, 잘 기억나지 않는 슬프고 느린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 셋은 함께 춤을 추었다. 빙글빙글 돌고 눈물이 흐르자 벽에 걸린 들꽃들이 조금씩 흐릿해져 갔다. 나는 우리를 가깝게 묶어 준 음악에 맞춰 흐느적흐느적 움직이며 팔을 더 꽉 조였다. 그 안에서, 세상과 동떨어진 우리 셋만의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흐느끼며 춤을 추었다.
메그 가족의 모습을 보며 내가 기대했던 그 여름의 끝은 몰리의 회복이었다. 죽어가는 딸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던 부모의 모습처럼 나 또한 몰리의 죽음을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도 나도 결국 몰리의 죽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남은 세 가족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함께 춤추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 상실의 상황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건강한 애도의 시작이라고.
p.184 시간이 흘러도 우리 인생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우리는 묵묵히 살아가야 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을 더 자주 기억하게 된다. 텅 빈 침묵은 이야깃소리와 웃음소리로 조금씩 채워지고 뾰족하기만 하던 슬픔의 모서리도 점점 닳아 무뎌진다.
상실에 대처하는 모습이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상실이 주는 고통의 이유는 그 대상을 향한 사랑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 아닐까. 그저 눈물만 흘리게 되더라도, 혹은 어찌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삶 뒤엔 늘 죽음이 있고, 일상의 곳곳엔 헤어짐이 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뾰족하기만 하던 슬픔의 모서리’가 어느새 뭉툭해져, 묵직한 슬픔 정도는 감내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살다 보면 ‘울 때도 있고 웃을 때도 있다는 것을, 또 웃음과 울음이 어떤 때는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p.149)’을 마음에 새긴 채 그렇게 살아간다면 말이다.
꿈을 꾸고 며칠 지나지 않아 부모님께서는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아빠의 성화로 엄마는 며칠에 한 번씩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보이스차(엄마들 특징, 이름을 이상하게 말함)랑 말린 망고 가져가.’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으니 가족들에게 기념품도 주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꽤 컸을지도. 주말이 되어서야 겨우 만난 부모님의 중국 여행기를 듣고 돌아온 밤, 나는 엄마의 카카오톡 프로필에 있는 부모님의 여행 사진을 몰래 캡처해 사진첩에 저장했다.
아직 잠자리 독립을 하지 않은 둘째 아이와 마주 보고 누웠다.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넘겨주다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면 아이는 5분도 되지 않아 달콤한 숨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진다. 아이의 점점 느려지는 숨소리를 들으며 언젠가 먼저 나를 떠날 부모님과 내가 먼저 떠나올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머릿속에 그렸다. 미래의 울음을 걱정하기보단 현재의 웃음에 충실한 마음으로.
*이 글은 제가 참여하고 있는 계절 글방 #미루글방의 여름, 3번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