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편견을 극복한 그의 의지와 곡물 같은 재즈.
저는 그녀의 색소폰을 듣다 보면 지나치게 곡물이 많은 에너지 바를 먹는 것 같습니다. 에너지 바를 먹는 상상을 해주세요. 아몬드와 땅콩으로 딱딱하고 아래는 비교적 말랑한 초콜릿이 함유된 바를 씹다 보면 초콜릿을 잊어버린 채 입안에 풍부한 곡물이 턱 어디론가 흡수되는 느낌입니다. 단맛을 내기 위해 일정량 첨가물이 들어갔음에도, 또 어쩔 수 없이 식사 대체용이라서 완벽한 식사답지 못한 것은 당연하지만, 먹으면 어떻게든 한 끼가 해결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진푸름 색소포니스트의 연주는 바로 그렇습니다. 어쩌다 한곡을 들었다면, 도입부의 들어가는 첫 모금의 색소폰 연주는 다시 듣고 싶어 집니다. 하드 재즈, 그러나 곡물을 씹는 것 같은 풍미.
진푸름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클래식 피아노를 처음 배우게 됐는데 선생님이 너무 연습만 강요하니까 지쳤다고... 사실 띵띵띵 지루한 패턴만을 연습하다 보면 빨리 악기에 흥미를 잃어버리곤 하죠. 그러곤 악기 연주를 생각지 않다가 우연히 친구 따라 옆 여자고등학교에서 하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고 감동받았다고 합니다. '아니, 나랑 같은 친구들인데 저렇게 멋지게 연주하다니.' 싶은 감정이었겠죠. 그다음 날 부모님 옆에 서서 얘기했다고 합니다. 음악 하고 싶다고, 하고 싶다고, 아잉! 하고! 싶다고!
진푸름에 아버님은 고민 끝에 자신이 알고 있는 친구 중에 색소폰 연주를 하는 친구가 있어 진푸름을 소개해줬고, 그 길로 그녀는 색소폰 연주자가 됩니다. 아버님도 '어라?'싶었을 겁니다. 한두 달, 또는 한 두해 하고 끝날 줄 알았던 음악을 평생의 길로 가져갈 줄은 몰랐을 겁니다.
그냥 색소폰을 하게 되었고 색소폰을 연주하다 보니 우연히 재즈를 접하게 된 진푸름은 그 우연 따라 운이 좋게도, 실력 좋은 뮤지션들과 함께하며 재즈 뮤지션의 길로 곧 잘 걸었지만. 한 편 내가 할 수 있는 곳이 비단 한국뿐이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더 진보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던 진푸름은 돌연 뉴욕으로 건너가 연주를 시작하게 됩니다.
진푸름은 한국에서도 받을 편견을 모조리 뉴욕에서 받게 됩니다. 아니, 더 받게 됩니다. 결혼도 했고, 아이까지 생기면 악기는 그만두게 될 것이라는 한국의 편견들을 포함해, 미국으로 유학까지 가니까 수업을 듣는 동양인은 자신밖에 없었고, 게다가 수업을 듣는 여성의 수도 남성보다 적습니다. 여러 가지 교집합 합집합 따져 봤을 때 진푸름이 들어갈 곳은 없었습니다. 남들의 시선을 잘 신경 쓰지 않는다던 본인의 성격과는 별개로 그런 상황에 놓이니까 매일매일 피가 마르듯 연습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합니다. 저라면 당장 고국으로 건너왔을 겁니다. 대단해 정말.
그렇게 강인한 멘털로 지금까지 뉴욕에서 활동 중인 진푸름 색소포니스트는. 이번 2019년 음반 <The real Blue>으로 미국 재즈 저널 <다운비트>에서 별 4개를 받으며 재즈 시장에 더욱 깊이 진입합니다. 싸이, 방탄소년단, 김연아, 박지성, 봉준호. 이들의 갖고 있는 세계적인 입지는 저를 항상 애국심에 차오르게 합니다만, 재즈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진푸름의 입지는 더욱 저를 국뽕에 달아오르게 합니다. 게다가 수많은 비관적인 시선과 부딪혀 올라간 진푸름의 연주는 또 듣다 보면 어쩐지 단단하기에. 오늘도 곡물 에너지 바 같은 가득 찬 진푸름의 연주는 첫 부분이 특히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