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메아리 재즈를 들으면서. 최첨단이라고 수식 붙여놓은 그것을 느끼다.
먼저 말하지만 제목은 내가 한 말이 아니고, 누가 한 말도 아니다. 남메아리가 호원대학교를 졸업한 것은 맞지만, 나는 여자도 아니라서 언니라고 부를 이유가 없고, 어머머 하면서 호원대학교 나왔냐고, 그러니까 나도 같은 대학교 나왔다고 할 수 없다. 나는 다른 대학 나왔으니까.
재즈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티스트의 이력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썰도 궁금하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생애 무대 뒤편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백인 경찰과 시비가 붙었던 일화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렇다. 아티스트의 음악이 좋아지면, 아티스트의 사생활과 이력이 너무나 궁금해진다. 그리고 잘 알게 될수록 청자는 팬이 되고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방탄소년단이나 잔나비는 사생활을 보다 쉽게 검색할 수 있겠으나, 재즈 아티스트는 찾기가 어려워서 단 하나의 작은 썰만 찾게 되면 다른 때보다 신난다.
사실 이력과 사생활 따위 뭐가 중요한가. 음악만 좋으면 된 것 아닌가. 브랜포드 마샬리스의 음악이 유명하면 뭘 하나. 듣기 별로면 거들떠보고 싶지도 않은 것 아니겠는가. 내가 듣기 좋아야 하는 따라다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남메아리의 [늦은감은 있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남메아리의 호원대학교 이력을 보게 되었을 때, 왠지 그 한 줄만으로 내가 엄청난 팬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려 연세 서울대 이런 거 말고 호원대학교라고 하니까 내 무의식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것 같아서 그랬나보다. 음. 이 글을 남메아리가 보면 나를 비웃겠지만, 안 볼 확률이 많으니까.
아무튼 이야기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남메아리의 숄더키보드는 정말 매력적이다. 낭랑하면서 펑키하달까. 어두운 밤에 흑맥주 한 캔 마시며 듣고 있는 이 밤에 숄더키보드가 쫀듸기 같은 것으로 보이기도 하네. 남메아리 연주부분만 반복으로 재생하고 싶은데 이거 반복을 어떻게 할 수 있는거지.
오늘 오전에는 설거지를 하면서 뚜라두라두라두 선율을 따라 부르며 혼자 엉덩이 춤을 추고 있었던 나였다. 내 아들은 이 음악을 들으며 "사탕이 춤을 추는 노래"라고 감상평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