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보면 절대 안됩니다.
이 이야기는, 와이프가 절대 보면 안되는 이야기 입니다.
남자라면 제가 게임이야기만 해도 동년배일지 아닐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제가 게임 제목 여러가지 나열해볼테니 저의 나이를 맞춰주세요.
저는 문방구 앞에 있는 백 원짜리 오락기 앞에 쪼그려 앉아 철권, 메탈슬러그, 던전앤드래곤, 케딜락앤다이노소어를 했습니다. 닌텐도로 드레곤퀘스트 몬스터즈, 포켓몬스터, 버블버블을 했습니다. 친구 집에 있는 바이오 하자드를 잠깐 접한 뒤로 집에 못 돌아간 적도 있고요. 아빠가 웬일인지 컴퓨터를 사 놓았는데 스타크레프트 게임CD까지 장만해주셔서 그 맛있었던 라면을 끓여주셨는데 다 불어터질 때까지 식탁에 안 간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디아블로2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안다리엘을 잡고 메피스토를 잡고 소서교복을 입고 매직참을 거래하기도 했죠. 그 시절의 제 추억은 온통 PC방으로 가득했습니다. 거상이 지금도 서버종료를 안 했는지 모르겠는데 참 열심히 했고, 던전앤파이터도 초창기 시절 직업이 3개밖에 되지 않았을 때 정말 재미있게 했습니다. 뮤(MU) 같은 3D 그래픽의 MMORPG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점점 새로운 게임을 알아가는 것에 피로도를 느꼈고, 스타크레프트2가 어느덧 세상에 공개 되었을 때 저는 군대를 입대했습니다. 온 세상이 헌팅하고 술마시고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 저는 PC방에 정액권을 끊어놓고 앉아 캠페인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는 결혼을 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유치원에 보낼 즈음 브롤스타즈를 다운받아 잠깐 했다가, 인생을 멀찌감치 바라보니 제가 어른이 된 것 같지 않고 아직은 철부지라는 것을 느껴서 게임 어플을 삭제했습니다.
그런데 아이 엄마가 닌텐도 스위치에 있는 동물의 숲을 하고 싶다고 하지 않겠어요? 게임에 관심이 없어질듯 말듯한 작은 불씨를 다시 피어오르게 한 것은 다름아닌 아내였는데, 그때 같이 산 게임은 젤다의 전설이였습니다. 한판을 거하게 마무리하고나니 무려 1700시간을 젤다의 전설에 녹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씩 그 감동적인 이야기를 유튜브로 시청하곤 합니다. 다른 유튜버들의 게임을 구경하다보면
아이가 처음으로 했던 게임은 바로 '몬스터 트럭' 게임이였습니다. 자동차를 잠깐 좋아했던 아이에게 몬스터 트럭이 경주하는 패드 게임을 시켜줬는데, 빨려들어가듯 패드를 쥐고 손에서 놓질 않았죠. 그 때 나이 3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확실하진 않지만 더 늦은 나이에 시작했을 거라 예상합니다.).
현재는 닌텐도 스위치 게임들을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초등 1학년이고요. 이제 곧 2학년입니다. 별의 커피, 마리오 디럭스, 마리오 원더, 이런 것들을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가끔 놀이터에 있는 형들이 휴대폰으로 뭔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 게임들은 참 다양한데, 그 중에 로블록스는 제가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게임 중 하나입니다. 설정을 통해 아이가 참여하지 못하도록 컨텐츠를 가리는 버튼이 있긴 합니다만 워낙에 게임 난이도가 뒤죽박죽이며, 현질을 유도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참여자가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의 퀄리티가 심각하게 낮다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예요.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날 아이의 같은 반 아빠를 만났습니다. 아이에게 많은 게임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던 아이의 아빠는 꽤나 어린시절부터 아이와 함께 조이스틱 게임을 해왔고, 게임 콘솔을 이것저것 많이 구매했다고 하시더라고요. 호기심에 이것저것 물어보고,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제 손에는 구형 닌텐도 크기에 작은 게임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쪽 아버님이 저와 아이를 위해 잠깐 빌려준 것이죠.
저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좀 더 다른 경험이라면 영어를 뜨문뜨문 읽게 될 수 있어서 스토리를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어린시절 코인만 따박따박 넣으면서 무지성으로 클리어했던 게임들이 서서히 장대한 서사시로 제 몸에 흡수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의 옛날 게임을 아이와 공유하는 느낌은 즐거웠습니다. 아빠가 게임중독자였던 사실이 비밀은 아니였지만 이토록 아빠는 재미있게 즐겼다는 것도 느낌으로나마 알려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매우 게임기가 좋았지만, 아이의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아 게임기는 돌려드렸습니다.
학창시절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게임을 했던 아빠의 입장으로서, 저는 아이가 이런 게임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픽이 좋거나, 서사가 있거나, 실패를 경험하거나, 경제를 예측하거나, 상대방과 협동 또는 배려하고 결정하거나, 머리를 쓰거나, 세계관이 있는 게임 말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넘어 깔깔 웃을 수 있는 게임이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디스토피아적인 SF는 철학적인 의미를 주기 때문에 너무 게임 분위기가 어둡더라도 이 또한 환영입니다.
반대로 이런 게임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광고가 많거나, 잔인하거나, 선정적이거나, 스코어가 반복적이거나, 창작자가 검증되지 않은 게임들은 하면 안됩니다.
예상하건데 저희 아이는, 게임을 좋아할 겁니다. 그리고 반 평생을 저 처럼 게임으로 인생을 즐기게 될 겁니다. 게임 좋아하는 아빠들은 모두 같을 겁니다. 게임도, 좋은 게임이 있고, 나쁜 게임이 있어. 아빠가 골라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