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빠육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두 Apr 04. 2023

내가 돈 백만원 쓴 게 아이 잘못일리 없어

계속 사고가 나는 최근 인생에 대하여

속상하고 우울한 밤이다. 지금 이 글을 쓰지 않으면 답답할 것 같아서 정리가 되지 않은채로 적어본다. 


며칠전에 차 사고가 났다. 차가 밀리는 구간에서 정차중에 뒷좌석에 앉은 아이가 소변이 마렵다며 발버둥을 쳤고, 좌석 아래에 있는 소변통을 뒤적뒤적 찾다가 브레이크를 놓치고 앞 차를 받았다. 순간 아찔했다. 밖에 나가서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앞 차에서 나온 50대 남성은 '옳타커니 잘 걸렸다.' 생각한 듯 사방팔방 사진을 찍더니 보험사를 부르라고 했다. 죄송함을 받아주고 쿨하게 가실 줄 알았는데 갓길에 차를 새워 내가 과실을 100퍼센트 인정한 상황을 계속 보험사에게 인지시키며 상황이 전개 되었다. 추후에는 범퍼수리비와 렌트, 종합병원 비용까지 고스란히 가져갔다. 아직도 기억난다. 자동으로 열리던 트렁크에 깔끔한 내관 속 빛나는 골프가방. 그리고 날아간 나의 백 만원.


한 편 요번주에 있었던 일을 털어놔야겠다. 지나간 일요일에 아이를 두고 잠시 커피를 사러 나갔다 왔다. 우리 아이는 일곱살이 되었고 간혹 아빠 혼자 나갔다와도 조용히 그림을 그리거나 닌텐도를 켜고 게임을 하곤 했다. 그래서 커피 한잔을 사서 들어와 한 시간 정도 놀다가 키즈카페로 향할 참이였다. 그런데 커피를 들고 온 나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노트북 키보드 자판쪽에 충전선이 걸쳐 닫혀있었고, 아이는 그 위에 몸을 누르고 있었던 것. 아이를 재껴버리고 노트북 뚜껑을 열어보니 액정이 바스락 깨져있었는데,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어 한동안 얼어있었다. 아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아빠 왜 무지개 색 선이 많아졌어?" 따위에 진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맡아놓은 영상 프로젝트가 있는데 당장 모든 게 중지되었고, 나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가 지금 노트북을 간신히 수리받고 돌아온 참이다. 또 한 번 날아간 백 만원. 


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고자, 새로운 물건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노트북을 마치 본체처럼 쓰기 위해 키보드와 트랙패드, 그리고 모니터까지 추가로 구매했다. 아, 최근 프로젝트차 방문한 경북 한 박물관에서 에어팟을 잃어버려 다시 구매한 사건은 너무 거추장스러워서 말을 못하겠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물건들을 구매하기 위해 또 돈 백만원을 썼다. 


돈을 쓰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리라 직감한 나는 업무 환경을 바꾸려 했다. 하여 일어서서도 컴퓨터를 만질 수 있도록 모션데스크를 하나 구매했다. 또 그렇게 백 만원이 날아갔다. 


자꾸 큰 돈이 날아가니까 마음이 쿵쿵 내려앉았다. 게다가 최근에 올린 영상 하나가 악플에 시달리면서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있다. 이것도 따로 이야기할만큼 사연이 길다. 


--------------





이 모든것들이 아이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내가 이 문장을 쓴 이유는, 차 사고가 난 순간, 맥북이 고장난 순간, 그리고 모든 것이 엉켜버린 그 순간마다 내가 '아이만 없었더라면,'이라고 무의식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비참하고 쓸모없고 더럽게 느껴졌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아이 덕분에 나는 영상으로 일을 할 수 있었고, 육아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었고, 아이가 없었다면 더 많은 장비를 손에 쥐지 못했을 것이며, 아이가 없었으면 자동차를 운전하지 못하는 철부지로 살았을 것이다. 그 모든것들을 이렇게 끄적여서야 깨닫게 되는데 왜 현실에서는 아이 덕이 없는 것처럼 구는지 나도 내가 정말 나쁜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컴퓨터가 수리된 것이다. 그리고 수리가 된 상황에서 아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는 것이 훨씬 고무적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아들에게 너무 감사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