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 없는 내 아들을 위한 안내서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봅니다. 그 시절에 만화책을 대출해 주는 책방이 있었는데, 만화책 한 권에 400원씩 하는 책방이었어요. 만화가 수두룩 빽빽한 서재에 압도되기도 했고, 사장님에게 말할 용기를 갖지도 않았던 저는 그냥 서재를 휘 둘러보다가 책방을 나오곤 했습니다. 대여점에 갔던 이유는 정말 단순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책 읽는 모습을 인정받고 싶었고, 만화책이라도 읽는 저를 어머니는 참 대견해하셨거든요. 그렇게 어머니 손에 끌려간 대여점에서 저는 얼떨결에 도라에몽 만화책 한 권을 어머니 옆에서 수줍기 빌리고 그 뒤로 혼자 갔다 빈손으로 오길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책방 사장님이 한 권을 먼저 추천해 주셨는데, 빌리고 와서 읽어보니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만화책을 보면서 깔깔 웃어보긴 처음이었는데, 한 번 읽고 나서 결국 시간이 다 되어 반납을 했는데. 그 만화책 이름이 도무지 기억이 안 나서 끙끙 앓았던 적도 있습니다. 사장님께 물어보기가 너무 겁이 났던 걸까요... 그 뒤로 여러 가지 만화책을 빌려봤다가 예전만큼 웃기지 않아서 대여점 가는 발길이 끊겼습니다.
자신감을 갖는 건 참으로 별게 아니더군요. 어떤 물건을 살 때 궁금한 첨을 이야기하고 주고받는 것, 그 사소한 행동으로 자신감이 크게 오를 수 있다는 걸 고등학생쯤 되고나서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아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썼습니다. 아들은 도서대출증이 학교에서 발급되었는데 쉽게 책을 빌리지 못하는 이유를 들었을 때 생각난 정리입니다. 책을 빌리는 것이 너무 쑥스럽다고 하네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제 옛날 생각이 나서 속으로 살짝 웃었습니다. 아빠와 많이 닮아있어서 놀랬고, 상대방과 이야기할 용기를 살짝만 갖게 되어도 너무나 즐거운 도서관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얘기하기.
상대방과 얘기하기 어려울 때, 눈을 바라보기 어렵다면 눈과 눈 사이 미간을 바라보고 이야기해보면 좋겠습니다. 점원과 이야기할 때에 시선을 흩트리지 않고 오로지 미간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연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자주 얼굴을 봐 왔지만 어색했던 사이의 관계도 충분히 먼저 대화를 이어나가 친한 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대화 소재 거리가 없다면 상대방이 궁금한 것과 관심사를 내가 아는 한 머릿속으로 정리해서 이어나가야 할 텐데, 그건 도서를 대출하는 사람에겐 너무 방대한 이야기니까 생략하겠습니다.
독대를 할 수 있는 경험치.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나이가 차면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게 될 텐데요. 옛날 제 시절처럼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괴롭히거나 광대처럼 재미있게 굴 필요 없습니다. 몸으로 웃기려고 얼굴을 뭉개거나 목소리를 꺾어 연극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상대방을 위한 정보를 파악하고 내가 궁금한 점을 자연스럽게 물어보면 됩니다. 많은 사람과 대화하는 연습을 통해 단 둘이 이야기할 때 감정에 빈 공간이 없이 어색하지 않아야 합니다. 정말 상대방을 좋아한다면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고, 관심이 생기면 대화주제는 끊이지 않겠죠. 다만 좋아하는 사람과의 이야기를 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은, 잘난 척을 하지 않는 겁니다.
똑똑해 보이려고 하지 말기.
제 이름은 김호두입니다. 똑똑해 보이고 싶어서 지어낸 닉네임이지만, 제 학창 시절 공부는 꼴찌를 달리고 있었죠. 해박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해야 했는데, 그건 너무 싫었고 남들에게 인정은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연극학과에 들어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거짓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정보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말투로 대화를 이어나갔는데, 이건 지금도 가끔씩 아내와 이야기할 때 나오는 버릇입니다. 정말 나쁜 버릇인 것 같습니다. 인정욕구에서 나오는 이런 버릇을 고치기 위해 저는 매번 "그랬던가?" "저번에 검색해 보니..." "책에서 봤는데 이건 말이야..." 하면서 어디서 경험했던 것을 살짝 갖고 와서 내 의견을 덧붙입니다. 그리고 물론 이건 상대방이 관심을 갖고 있어야 대화가 더 부드럽죠.
말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 시대
'금일'이라는 뜻을 금요일로 착각하거나, '심심한 사과'라는 말을 두고 "심심한데 왜 사과를 하냐. 그게 진짜 사과 맞냐."는 말을 하는 요즘 청소년 어휘력은 심각하게 안 좋은 수준이라고 하죠. 그런데 시기가 지나면서 대화하는 게 너무 어색하고 힘들어서 어려운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짜장면을 주문하기 위해 전화를 하는 사람도 줄고 있고,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오더로 주문해도 되며, 오프라인 매장에서 살 수 있는 모든 상품을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 있는 시기가 왔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제는 말을 재치 있게, 유머러스하게 하는 사람보다 '정상적으로' '올바르게' 하는 사람이 매력적인 세상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