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와이셔츠

나는 다림질 못하는 아내입니다.

by 꾸준한거북

신혼 무렵,

시부모님과 외식을 하고 카페에 가서 앉아있는데

남편을 향해 시아버님이 한마디 하신다.

"안다려주면 네가 직접 좀 다려입어"

며느리가 안다려줘서 구겨진 반팔셔츠를 입고있는 아들이 못마땅한 시아버님.


그 날 이후, 나는 스스로 와이셔츠를 다려주지 않은 아내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그래!까짓꺼 내가 좀 다려줘보자' 하며 호기롭게 현모양처 코스프레를 시작했다.

허나 그게 지속이 될 리가-


나는 타고난 여장군 체질인지라 바느질, 다림질,

옷 예쁘게 개키기 등등 살림과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는 꽝인것을.

어려서부터 내가 괜히

"너는 기지배가 왜그리 선머슴같이 구니" 라는 말을 귀에 딱지 앉게 들은게 아닌데 말이다.


나는 못한다.

남편 와이셔츠를 안다린게 아니라 애초에

못 다린다. 다림질 솜씨는 남편이 월등하다 못해 웬만한 세탁소 저리가라다.

아..나는 왜 그말을, 초보며느리 시절 아버님께 하지 못했을까!

그저 죄인마냥 아무 말도 못하고 커피만 들이키고 있던 내 속은 어떠했던가.


그렇게 허공에서 맴돌다가 버려질 핀잔을 듣고 수치심을 느꼈을 너.

'나는 와이셔츠도 못 다리는 무능한 아내'라는 이름표를 가져다가 가슴에 박아놓고는 잘 다리지도 못하는 와이셔츠를 이리 펴보고 저리 뒤집어가며 낑낑대다가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여자가 이런 것도 못하고' 하면서 남녀성역할을 고정시켜두신 시아버님에게 내 생각을 종속시킨 채

소중한 며칠을 버린 너.


"기지배가!"라는 소리를 그토록 떼어내고 싶었으면서. 너무 들어서일까?기지배는 이러면 안되지...아 그런데 나는 이러고 싶은데. 이렇게 놀고 이렇게 행동하는게 나는 편하고 좋은데.


주위 어른들이 '기지배는 이래야한다'는 틀을 정해놓았기에 나는 나의 기질을 억누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억압에서 끝이 아니라, 죄책감까지 오랜시간 가지고 살아오다보니 관계맺은 이들에게 인정받고자 내가 할 수 없는 것까지 잘해보이고자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이다.


지금은 어떠냐고?

신혼이후로 남편은 물론이고 나자신도 '와이셔츠는 아내가 다려야지'라는 생각마저도

단 한번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시아버님께서 비슷한 핀잔을 주신다면?

"아버님, 저는 그 영역은 영 소질이 없네요."

하고 답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초보딱지를 떼서인가?)

그대신 나는 아이셋 잘 기르며 소신을 유지하려는 엄마로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보듬어주며

살고있지 않은가!


"그래, 오늘도 이만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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