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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거북 Jun 27. 2022

너 앞으로 안 데리고 다닐 거야!

상황과 감정을 분리해서 말하기

어린이대공원역 앞에서 큰아들이 울어재낀다.

실컷 동물 구경하고 나와서는

짜장면을 점심으로 먹자는데 대공원 건너 세종대학교 근처에는

내가 아는 중식당도 없거니와 도보로는 생전 처음인 곳을 이 더위에 어찌 찾으란 말인가.

그것도 4살 동생까지 이끌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둘째 손목을 꽉 부여잡고

저만치 뒤에서 입을 대빨 내민 채 털레털레 걸어오는 큰아들을 신경 안 쓰는 척, 나도 불안하니 흘긋흘긋 한 번씩 뒤돌아보며 걷다가 불만을 토로하는 큰아들에게 목구멍까지 나오려다 말다 하려던 문장을 내뱉고야 말았다.

"너 다음부턴 안 데리고 다닌다!"

(아뿔싸! 또 내지르고야 말았군..)

화가 나면 분노의 언어가 앞서는 나는 말을 내뱉는 찰나에 반성을 하는데, 그것이 그나마 분기탱천하여 앞뒤 분간 못하고 더 화내기 전에 멈추게 해 주는 신호가 될 수 있는 거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잠시나마 화를 가라앉히고 둘러보니 

대학가 입구쯤에 위치한 40년이 다 되어가는 할머니 백반집이 눈에 들어왔다. 내게는 대학시절 추억을 음미할 수 있는 테이블 4개 남짓한 작은 식당.

그곳에는 아들이 좋아하는 '짜장면'은 없었으나

둘째가 좋아하는 떡볶이에, 내가 좋아하는 찌개류, 덮밥류로 메뉴가 주를 이뤘다.


짜장면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먹는 불고기덮밥을 시켜서 큰아들 앞에 두었고 녀석은 몇 분 가량을 엎드려 작은 소리로 훌쩍이다가

"이제 먹어야겠다"하며 눈물을 훔치고 감정을 다 추스렀는지 숟가락을 집어 들고 계란국부터 후루룩 마신다.


"엄마 그런데... 아까 엄마가 앞으로 안 데리고 다닌다고 말했던 거...."

"속상했어?"

"응"

"미안해. 엄마 진심 아니었어.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닌데,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라 엄마가 홧김에 그랬어.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그렇게 말하지 않을게."


그래 정말 그렇다.

기분 나쁜 ''기분 나쁜 ''

분리시켜야 한다.

특히 지키지도 못할 약속 같은 것.

"앞으로 안 데리고 다닌다"라는 약속은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그저 협박성 멘트인 것을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 말 한마디에 큰아들은 풀이 죽는다.

남편도 가끔 아들이 말을 안 들으면

"너랑 축구 안 한다"

"너랑 거기 안 간다"와 같은 유치한 반응을 보이는데

그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때마다  '어차피 나갈 거면서 괜히 애기분 상하게 한다'며 쓴소리를 날렸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던 날.


아이는 그런 말 한마디에 온몸을 애벌레처럼 웅크리고는 아무 말도 않은 채 자신이 거부당한 듯한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바로 어제 주일에도,

 근처에 사는 지인가족과 오후 3시면 축구 약속이 있는데 아들 둘이 계속 다툰다는 이유로 축구를

안 가겠단다.

"엄마가 데려다줄게"했더니 아들이

"엄마 고마워" 한다.

"고맙긴. 기분 나쁜 일은 나쁜 거고 약속한 건 지켜야지. 네가 말 안 들어서 물론 혼날 수 있고 엄마 아빠 기분이 나빠질 순 있지만 그거랑 약속은 따로따로인 거야. 그걸 엄마도 지키려고 노력할 거고."


이런 상황 하나하나가 쌓여 나도 남편도 어떠한 상황에서 조건을 걸면서 아이를 대하지 않고자 애쓰며 성장하기를 바란다. 우리의 한 문장이 순간이지만 아이에게는 그것을 빠르게 흡수할 능력 또한 순간임을 자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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