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앞으로 안 데리고 다닐 거야!

상황과 감정을 분리해서 말하기

by 꾸준한거북

어린이대공원역 앞에서 큰아들이 울어재낀다.

실컷 동물 구경하고 나와서는

짜장면을 점심으로 먹자는데 대공원 건너 세종대학교 근처에는

내가 아는 중식당도 없거니와 도보로는 생전 처음인 곳을 이 더위에 어찌 찾으란 말인가.

그것도 4살 동생까지 이끌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둘째 손목을 꽉 부여잡고

저만치 뒤에서 입을 대빨 내민 채 털레털레 걸어오는 큰아들을 신경 안 쓰는 척, 나도 불안하니 흘긋흘긋 한 번씩 뒤돌아보며 걷다가 불만을 토로하는 큰아들에게 목구멍까지 나오려다 말다 하려던 문장을 내뱉고야 말았다.

"너 다음부턴 안 데리고 다닌다!"

(아뿔싸! 또 내지르고야 말았군..)

화가 나면 분노의 언어가 앞서는 나는 말을 내뱉는 찰나에 반성을 하는데, 그것이 그나마 분기탱천하여 앞뒤 분간 못하고 더 화내기 전에 멈추게 해 주는 신호가 될 수 있는 거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잠시나마 화를 가라앉히고 둘러보니

대학가 입구쯤에 위치한 40년이 다 되어가는 할머니 백반집이 눈에 들어왔다. 내게는 대학시절 추억을 음미할 수 있는 테이블 4개 남짓한 작은 식당.

그곳에는 아들이 좋아하는 '짜장면'은 없었으나

둘째가 좋아하는 떡볶이에, 내가 좋아하는 찌개류, 덮밥류로 메뉴가 주를 이뤘다.


짜장면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먹는 불고기덮밥을 시켜서 큰아들 앞에 두었고 녀석은 몇 분 가량을 엎드려 작은 소리로 훌쩍이다가

"이제 먹어야겠다"하며 눈물을 훔치고 감정을 다 추스렀는지 숟가락을 집어 들고 계란국부터 후루룩 마신다.


"엄마 그런데... 아까 엄마가 앞으로 안 데리고 다닌다고 말했던 거...."

"속상했어?"

"응"

"미안해. 엄마 진심 아니었어.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닌데,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라 엄마가 홧김에 그랬어.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그렇게 말하지 않을게."


그래 정말 그렇다.

기분 나쁜 '거'랑 기분 나쁜 '말'은

분리시켜야 한다.

특히 지키지도 못할 약속 같은 것.

"앞으로 안 데리고 다닌다"라는 약속은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그저 협박성 멘트인 것을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 말 한마디에 큰아들은 풀이 죽는다.

남편도 가끔 아들이 말을 안 들으면

"너랑 축구 안 한다"

"너랑 거기 안 간다"와 같은 유치한 반응을 보이는데

그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때마다 '어차피 나갈 거면서 괜히 애기분 상하게 한다'며 쓴소리를 날렸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던 날.


아이는 그런 말 한마디에 온몸을 애벌레처럼 웅크리고는 아무 말도 않은 채 자신이 거부당한 듯한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바로 어제 주일에도,

근처에 사는 지인가족과 오후 3시면 축구 약속이 있는데 아들 둘이 계속 다툰다는 이유로 축구를

안 가겠단다.

"엄마가 데려다줄게"했더니 아들이

"엄마 고마워" 한다.

"고맙긴. 기분 나쁜 일은 나쁜 거고 약속한 건 지켜야지. 네가 말 안 들어서 물론 혼날 수 있고 엄마 아빠 기분이 나빠질 순 있지만 그거랑 약속은 따로따로인 거야. 그걸 엄마도 지키려고 노력할 거고."


이런 상황 하나하나가 쌓여 나도 남편도 어떠한 상황에서 조건을 걸면서 아이를 대하지 않고자 애쓰며 성장하기를 바란다. 우리의 한 문장이 순간이지만 아이에게는 그것을 빠르게 흡수할 능력 또한 순간임을 자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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