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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거북 Jul 26. 2022

포항 할머니

다음 여행을 꿈꾸게 해준 이

큰아들이랑 포항 걷기 투어 2일 차.

일찌감치 일어나 게스트하우스의 조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아들과 죽도시장을 향했다.

어제 집에서 새벽에 출발하느라 아들의 신발을 그만 작은 사이즈로 신겨 부랴부랴 나오는 바람에  포항시내를 걸어 다니는 내내 꺾어 신고 다니며 불편해했던 것. 나는 작아서 그런 거라곤 생각지 못한 채 왜 자꾸 꺾어신느냐고 핀잔을 주다가 운동화 사이즈를 보니, 175. 작아도 많이 작았겠구나.. 왜 작아서 그런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니.. 그리하여 죽도시장의 한 신발가게에 들어섰는데 새파랗고 가벼운 운동화가 아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내 보기에도 참 가벼워 보였는데 색깔이 내 마음에 안 들었다. 웬만해서는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주는데 그건 정말 촌스러워 보여서 다른 곳에도 가보자 하고 가게를 나섰다.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 간단한 조식을 먹고 무거운 배낭은 감사하게도 맡아주신다기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때, 아들이 아까 그 운동화를 사러 다시 시장으로 가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음.. 그래.. 새 파랑 운동화가 눈에서 그토록 아른거린다면 그걸로 해야지 뭐, 나도 너 맘때 새빨강 구두를 애정 했던 기억이 나니까.


그렇게 마음먹고 시장 속으로 다시 걸어가고 있는데 내 눈에 들어온 프로스펙스 매장. 나는 아들의 손을 이끌어 무언가에 홀린 듯 매장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곳에서 검은색과 하얀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세련된' 운동화를 신어볼 것을 권하고 있었다. 다행인 건지 아들도 그 운동화를 마음에 든다며 새 파랑 운동화는 까마득히 잊은 채 그것을 사달라고 한 것이다. 가격을 물으니, 시장 운동화보다 딱 3배 비싼 가격. (아... 내가 왜 이 매장에 들어왔을까.. 그냥 시장으로 곧장 갈걸.. 최대한 아끼는 여행을 계획했건만..) 고민이 됐지만 이미 머릿속에 들어차 반짝반짝 빛나는 브랜드 운동화는 시장운동화를 서글프게 할만큼 충분히 예뻤고 현재 집에 있는 아들의 운동화들은 다 물려받은 것들이라 꽤 오랜만에 하나쯤 사주자 싶어 흔쾌히 결제를 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후회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건지, 아들은 정말 정말 맘에 든다는 말을 연신 뱉어냈다. 새 운동화를 신고 우리는 영일대 해수욕장 방면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의 최종 목적지는 포항의 명소로 자리매김 한 스페이스 워크였으나, 7살'아들'은 항상 지금이 최고로 소중하기에 자신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참 신기하지- 순간을 만끽하는 7살의 행복추구 비결이란. 부럽다. 너의 그 채우고 비워짐이.


새로 산 운동화에 행여나 모래가 들어갈까 운동화를 벗어 들고 모래사장으로 사뿐사뿐 걸어 들어가는 아들이 귀여웠다. 그렇게 작렬하는 태양빛에 한껏 달아오른 모래를 밟으며 뜨거움을 느끼던 아들이 천천히 윗도리를 벗더니 바지까지 벗어 살며시 한 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자신의 운동화는 내 크록스 위에 엄마 품 안에 평온하게 안겨있는 아기처럼 포개어놓은 채. 옷도 모두 벗었겠다, 여기가 내집이다 싶게 팬티바람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영일대의 파도는 애기 파도 같았다. 그러니 아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들이 무릎만치 바닷물에 담가 놀고 있는데 체크무늬 긴 남방에 선글라스, 챙이 넓은 모자를 쓴 할머니가 해변도로에서 걸어오시더니 늘 해오던 무엇 인마냥 바닷속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가셨다.

아들을 향해 손짓하시며 ,

"이쪽으로 와본나. 내 앉아있어서 목까지 물이 차 있는 거 같아 보여도 요래 일어나면 여까지밖에(허리춤) 안온다 아이가~" 


아들은 자신감 넘치게 물을 즐기시는 할머니께로 다가가 마음을 풀어놓았다. 그렇게 할머니와 아들은 진짜 친구가 되어 바닷속 미역줄기를 잡아서는 공처럼 돌돌 말아 주고받다가 수영도 했다가 한 시간을 넘도록 오롯이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 덕분에 나는 중간에 해변을 산책할 수 있는 호사도 누리게 되었는데 그때 할머니께서 아들에게 "느그 엄마 안 보이는데 느그 엄마가 니 두고 간 거 아이가? 그러면 니, 우리 집 따라갈래?" 하시니

"네!" 하더란다.

그래 할머니께서 다시

"니 그렇게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될 텐데?" 하시니

"할머니는 괜찮아요. 그리고 저 엄마 번호 아니까 괜찮아요." 하며 할머니와 엄마 각각에게 무한신뢰를 보낸 것이다.

 "얘가 내를 보면서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거 알았나 보네요~" 하시는 할머니.

"그럼요~애들이 그런 건 제일 잘 느끼죠~"


우리 셋은 아마 서로가 서로를 믿었던 것 같다.

나는 아들과 할머니를.

아들은 나와 할머니를.

할머니는 나와 아들을.


아들이 우리 집에서부터 대각전 저 멀리 향해있는 포항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이런 신뢰를 담아갈 수 있다니 참 감격스러웠다. 

예전의 나는 그렇게 쉽게 열린 자세를 취하거나 나눠본 적 없는 팍팍한 삶이었다.

'의심'이 당연한 거라 여기며 육아를 하던 내가 서서히 세상을 향한 '신뢰적 관점'으로 시선을 돌린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현재도 ing 중이지만 분명한 것은 내게 아이들이 있기에 나의 ing는 계속 플러스 방향을 향해 뻗어나갈 거라는 것이다.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신뢰를 보내면 상대방도 그것을 온전히 받아 신뢰를 얻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할머니는 아들과 놀다가 사진을 한 장 찍어서 당신 휴대폰으로 보내줄 것을 부탁하셨고 나는 흔쾌히 보내드렸다. 건강하시라는 메시지를 담아-


포항에서 돌아온 다음 날, 할머니께 전화가 왔다.

"내도 온이덕에 너무 즐거웠다 아입니까~ 나중에 또 포항 올 거지요? 또 봐요~" 이 말씀 전하시려고.


할머니, 저와 아들에게 긍정과 신뢰를 심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할머니의 '지금'을 소중히 여기는 그 마음도 제가 잘 배우고 갑니다... 오래도록 바다  곁에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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