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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거북 Jul 28. 2022

철 없는 엄마

여행은 인증이 아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평화로웠는데

영일대 해변에서 현지인처럼 해수욕과 모래욕을 즐긴 아들. 화장실 앞 수돗가에서 차디찬 물로 온 몸에 묻은 모래를 떨어내고는 수건을 챙기지 못한 준비성없는 나는 입고있는 티셔츠로 아들 몸에 남아있는 물기를 대충 닦아주고는 옷을 입게끔 했다. 한차례 네가 원하던 놀이를 했으니 이젠 내가 원하는 스페이스워크로 좀 가볼까나?


잠시 고민을 하게 만든 스페이스워크 까지의 경로를 말해보자면, 바다를 낀 채 자전거 전용도로를 포함한 인도와 차도가 빙 둘러져있는데 성인 걸음 기준으로 30분은 넘게 걸릴 듯 보이는데다가 아들과 놀아주셨던 할머니말씀을 좀 더 보태꽤 높은 언덕도 걸어올라야만 한단다.

그래 까짓, 가보자.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순 없지! 햇볕이 좀 뜨겁긴해도 그런대로 온순한 바람도 불어 바다내음도 전해지고 이 정도면 가능할 거라 판단한 나는 방금 해수욕을 마친 아들의 컨디션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우리여행 목표 중에 하나인 '많이 걷기'를 실천으로 옮기고 있었다.


목표를 제법 잘 이행해주던 아들이 주저앉아 버린 건 스페이스워크를 정말 코 앞에 남겨둔 지점에서였다. 언덕을 오르다 지쳐 그대로 철푸덕 앉더니 땅바닥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주저앉을꺼야? 바로 저긴데? 너도 가고싶어했잖아. 힘내자.응? 엄마가 뒤에서 밀어줄께.응?"

"................."

"그럼 엄마 혼자 올라간다? 여기서 앉아있어~"

허나 생전처음인 장소에서 어찌 7살아들을 남겨둔채 오르지도 못할 롤러코스터 같은 계단하나 보겠답시고 올라가겠는가... 게다가 나도 많이 지쳐있었고 주저앉은 아들을 보니 안쓰러우면서도 부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많이 걸었으니 힘들겠지' 이해가 되다가도, 여기까지 걸어온게 아깝지도 않나' 철없는 엄마가 되었다가를 반복하고 있는데 아들은 정말 거기까지가 자신의 최대에너지를 엄마를 위해 쓴거였는지 당당하게 그리고 지당하게 '포기'를 선언했다.


"아 그럼 가지마. 내려가자!"  억지 양보를 하며

얄팍한 선심을 써주는데도 아들은 언덕중턱의 광장 한가운데에서 지금 내리쬐는 햇빛은 내가 모조리 흡수하리라는 결심이라도 한 듯, 웅크리고 앉아 일어설 생각을 않고 있었다.

"안 올라갈테니 내려가자구. 거기 그렇게 앉아있지말구! 버스타려면 어차피 한참을 또 걸어가야한다구!"

"으앙.........!"

"휴.........(짜증 대폭발 중인 나)왜울어? 너 하고싶은 것만 하고 엄마가 하고싶은 건 안하는거야?" (지쳐있는 7살아들에게 날리는 40앞둔 엄마의 대사가 참 가관이다)

그렇게 울음을 터뜨린 아들의 손을 억지로 잡아끌고 내려가려던 나는 그마저도 응해주지 않고 다시 흙바닥으로 가서 쭈그려앉아 개미를 바라보고 있던 아들이 미워져 혼자 가파른 내리막길을 씩씩대며 그러나 빠르지 않게, 몇초에 한번 씩 뒤를 돌아보면서 걸어내려갔다.

"이제 너랑 진짜로 다신 안다닐꺼야!" 이 말을 도장 찍듯이 남긴 채.

서러움에 복받쳐 오열 중인 아들


'분명 어제, 아니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너와 나는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평화로운 세계에 있었잖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정도 나누면서 순간순간 후회없게 달려들고 금세 적응하는 너의 태도를 보며 이거다 싶은 그런 여행이었는데 이제와서 이게 뭐냔말이야.. 왜 나는 화낼 상황도 전혀아닌데 혼자서 멍청하게 불쇼를 내뿜고있는 것이고 너는 또 왜 그렇게 울어대는건데....왜....'


그렇다. 이 엉망진창의 시간이 어제감격스런 시간을 순식간에 집어삼킨 것 같아 너무나도 아깝고 억울했던 것이다. 아들에 대하여 엄마로서 억지로 참은 적도 없이 나는 나대로 정말 순수하게 기쁘고 새롭게 느낀 점도 많아서 이 낯선도시가 주는 온갖 것들을 다신 없을 것처럼 누리고 있었는데 이제와 어린아들 보다 더 어린엄마가 되어 포효하는 꼴이라니.. 그렇게 실컷 아까워하고나자  더는 아까워할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틈입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엄마가 밉고 속상할텐데도 미아가 될 수는 없다는 두려움에 따라오기 시작하는 아들. 울음은 그치질 않고 엄마는 도무지 화를 풀 생각을 않으니 얼마나 억울하답답했을까. 수영하고 여기까지 오는것만도 힘들었을 것이고 그마저도 엄마의 바람을 실현시켜 주고자 나름 젖먹던 힘을 쥐어짜낸 것일텐데. 그러다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는 더이상 오르지 못하겠다고 말해준 아들에게 고맙다고, 고생이 많고 자랑스럽다고,

지혜롭다고 해줬어야 하는건 아니었을까.


여러생각들이 휘몰아치며 다시 어른엄마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건지 몸은 자연스레, 아니 어쩌면 뻔뻔하게 아들을 향해 미안해하는 몸짓으로 돌려지더니 갑자기 양팔이 쭉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팔을 벌린 채, 언제그랬냐는 듯 긍휼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아들이 "엄마..! 나 안데리고 다닐꺼지?훌쩍훌쩍 엉엉~~~~~~!" 하며 달려와 와락 안긴다. '너랑 안다닌다'는 말이 가슴에 콕 박혀버린 아들. 지난 번에도 그런 말 했다가 상처줬는데 난생처음 여행의 참맛을 가르쳐 준 포항에 와서 이런 말을 내뱉다니! 오...주여...!

미안해 엄마가 왜그랬을까..많이 힘들고 무섭고 불안했지? 미안해정말...


제서야 아들의 피곤함이 눈에 들어온 미련한 나는 '방금 전까지 나쁜엄마'였다꼬리표를 떼어내고자  아들을 등에 업고는 남은 힘을 짜내어 스스로 고행을 자처하려했다. 그러나 이미 정오를 가까스로 넘겨 장렬히 내리쬐는 얄미운 태양 아래에서 업고걷기가 웬말인가, 안되겠다싶어 관광명소답게 즐비해있는 카페들 중 하나를 덥석 골라 들어갔다. 우리 수박쥬스나 먹고갈까를 외치면서. '6,000원짜리 맛없는  수박쥬스 들이키려고 내가 '이 짓'을 한게아닌데..그치만 맛없는 쥬스야 울아들 여행길이 안즐거웠던거로 마무리되지 않게만 해준다면 너에게 고마울꺼야' 라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아들의 표정을 보니 언제그런일이 있었던가? 하며 편안해져있다.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리고 잠시 쉬어본다.


 왜 해수욕을 마칠 무렵 아들이 피곤할거란 생각을 못했을까?애초에 오르지도 못할 아찔한 계단이기에 스치듯 지나치며 구경만 하고 내려올 그 곳에서 도달했다는 성취감을 가장한 미적지근한 경험치 하나 더하고 싶은 욕심이 더 강했기에 아들을 헤아릴 틈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스페이스워크를 꼭 보고싶다던지  한계단이라도 올라가야겠다던지 하는 간절함조차 없었다. 어찌보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험주의에 빠져서 남들이 가니까 아들에게도 한번쯤은 가야되지 않겠냐고 한 게 아닐런지.


욕심내지 않을 것을 배우게 해준 이번 여행.

어린 너의 컨디션도 고려해서 더 여유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리라고 마음 먹으 이제 그만 자기비난 문은 걸어잠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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