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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거북 Aug 17. 2022

아직 살아있다, 지하철 사람들

"언니, 난 출근길 지하철을 타면 좀 오싹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 아무도 서로를 쳐다보지 않아. 찍 소리도 내지 않지. 모두 시커먼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고 굳은 얼굴로 휴대폰을 들여다볼 뿐이야. 그럴 때 난 그 지하철 객실이 마치 커다란 관 같다는 생각을 해."       -안아라,내일은 없는 것처럼 中에서-

 타인과 마주치는 눈을 어디로 옮겨야할지 몰라 몇 초간 머뭇거리다 이내 아무 사람이 없는 죽어있는 공간으로 시선을 돌려버리는 지하철 안 우리나라 사람들. 소통이라고는 애지녁에 사그라든 것만 같은 공간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아이들에게 굳이 지하철에서 '소통'을 경험케 해주고 싶었다. 

돈을 거의 들이지 않으면서 남자아이들의 '탈것'에 대한 욕구도 충족시켜줄 수 있는 환상적인 공간.

채로운 색깔의 지하철노선도를 함께 익히면서 환승도 해보고 역이름도 알아보고, 아이들을 향한 사람들의 '다른'태도도 흠뻑 샤워할 수 있는 배움의 장.


처음부터 그렇게 거창한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다. 이곳저곳 아이들과 다니며 내가 좋아하는 여행에세이도 읽으며 하다보니 오고 가는 길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생겼달까. 7살,4살 아들 둘을 데리고 집에서부터 차로 25분정도 거리에 위치한 1호선 지하철역에 다다른 후, 주차를 하고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어느 날은 용산 전쟁박물관, 어느 날은 어린이대공원, 또 어느 날은 서대문형무소-


 목적지까지의 기본소요시간만 1시간이 훌쩍 넘는데 7살아들이야 점잖이 앉아서 자신이 좋아하는 종이접기도 했다가 오리기도 했다가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지하철 속도를 가늠해 보기도하면서 시간을 보내지만 4살아들은 재잘재잘 떠들며 개구진 미소를 짓곤한다. 그래도 돌아다니거나 방방 뛰어대지 않아 어찌나 다행인지.


110km로 달리는 시원하다못해 너무 차디찬 그 공간 속에서 우리 아들들따순 정을 얻어 먹는다.

"이거 안매운 생강사탕이야. 내가 아끼는건데 특별히준다!" 하며 올라타자마자 불쑥 사탕을 건네는 수다쟁이 할아버지.

"아이고 어쩜 요래 이쁘게 생겼을까~ 몇살인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옆자리의 할머니.

처음 몇 분을 째려보는 듯한 강한 눈빛을 날리기에 좀 부담스러워 시선을 돌렸던 나인데, 이내 가방에서 쿠키 두개를 슬며시 꺼내 큰아들에게 건네시는 반전 매력을 머금은 아저씨.

몇 정거장 지나 바로 내리실 계획인 위트넘치는 한 할아버지는 그 몇 분을  아들들과 팔씨름하는데 시간을 다 쓰신다.

"만져봐도 돼~ 이렇게 쓰다듬어 주렴~" 회색빛 푸들을 제 자식처럼 안은 채 우리 아들들에게도 내릴 때까지 쓰다듬을 허락해주신 할머니.

"Bye~!" 문이 닫히기 전까지도 연신 뒤돌아보며  아이들의 이모라도 되는 양,만나서 반가웠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내렸던 흑인아가씨. (지하철 안에서는 서로 통성명조차 하지 않았건만, 내리면서 인사를 하길래 다소 놀랐지만. 앞만보며 내달리면 그만인 것을 굳이 인사를 하면서 나가는 그녀가 참 고마웠음을... 다시는 안 볼 일회용 인연임에도 에너지를 들여 인사해주는 그녀로 인해 나와 아들은 또 하나의 인간미 넘치는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으니)

그녀의 등 뒤대고 큰아들이 말했다.

"참 고맙네"라고. 그 한마디에 다 들어가 있는거다.

이 지하철이 뿜어내온기가.


또 어는 날엔가는 중동 지역에서 온 가족으로 보였는데 딸이 둘 있었고, 둘째로 보이는 아이가 우리집 막내 딸이랑 비슷한 연령대로 보였다. 그래서 큰아들이 관심을 보였고 몇살일까? 하며 궁금해했다. 요즘 나가서 마주하게 되는 또래 아이들 나이를 그토록 궁금하게여겨 묻고 다니는 아들인지라 나는 가서 한번 물어보라 했는데 상대방이 기분나빠할까봐  못 물어보겠단다. 어딘지 조금 지쳐보이는 표정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나보다. 외국인이기도 했고. 무턱대고 물어보라는 나라는 엄마도 좀 무식한 것 같긴하다.

평소같았으면 먼저 다가가 물었을 아들 대신, 이번엔 내가 나섰다. 우리나라 나이로 20개월 조금넘었다고 했던가. 그래 이만하면 성공했다.

아들아! 낯선 이들에게 긴장을 풀고 다가가는 것. 네가 잘하는 그것을 이번엔 엄마가 해냈단다. 이만하면 엄마도 한 용기하지? 엄마 좀 멋지지?


내 예상과는 다르게 상대방 기분은 괜찮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먼저 다가가 손 내밀면 퍽 괜찮은 수확을 거둘 수도 있다는 것, 사람 (특히 어른)을 두려워 할 필요 없다는 것.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도, 조금 쌉쌀한 반응을 맛보았어도, 괜찮다는 것.


그렇게 우리 모자들은 배워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지하철은 아직 살아있음을 육아를 하며 느끼고 있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나또한 냉랭한 가슴으로 사유하는 것 없이 그저 기를 쓰고 타고 내리기만 하는데에 집중했 지하철에게 감사하는 요즘이다.


내게도 꽃 한송이를 피어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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