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꾸준한거북 Nov 08. 2022

아들친구에게 상처받은 39살에미?

아이들의 세계를 내게로 끌어오지 말 것

"엄마 이 티는 oo이가 내복 같다고 놀려."

유치원 등원 준비를 하던 어느 날,

내가 건넨 티셔츠를 받아 든 아들이 한 말이다.

"그래? 그런데 그건 oo이가 잘못 행동한 거야. 그럴 땐, 그렇게 말하면 내가 기분이 나빠. 그리고 이건 내복이 아니야~ 말해주고,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이해해봐." 하며 우선은 다른 티를 입게 했다.

또래집단에서 흔히 일어나는 에피소드이고 아들도 당당해질 준비(?)는 갖춰두고 그 티를 입히더라도 입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그날엔 다른 티를 입고 가라고 한 것이다.


다음날, 나는 당당해지라는 속뜻  담아 일명 내복 티를 입게 건네주었다. 또 놀림받을까 봐 싫다고 거부했다면 그 의견에 응당 존중을 표했을 터인데, 다행인지 아무 일 없단 듯 잘 입는다. 어제 알려준 대로 말하라고 한 번 더 주지 시켜주었고. '흐흐 귀여운 짜식. 놀리는 친구가 그래선 안 되는 거지, 내복 같은 티 입은 네가 잘못이 아니야. 피하지 마~ 너 마음을 전해~'

당당함을 착장 시켜 보낸 그날 하원한 아이에게 물으니 놀림받지 않았다고 한다. 왜 내가 더 안도가 되는 건지.. 아마도 놀림을 받은건 아들이 아닌 나인게 아닐런지..아들은 오히려 아무렇지 않았다.


생각해 보자면, 엄마에게 그 일을 입 밖으로 꺼냄으로써, 그리고 엄마가 그 일에 대해 나름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공감해줌으로써 모든 문제 상황이 올킬되어버린 게 아니었을까 싶다.


내 아이가 내복 같아 보이는 티를 그다음부터 안 입고 갔다면 상대 아이는 기억조차 못했을지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그래도 나는 놀린 아이의 말이 친구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과 내 아이도 똑같이 그런 말을 타인에게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똑같은 상황을 재연시켰다. 나도 어른이지만 친구나 지인이 내 옷차림을 보고 놀리듯 말하면 기분도 나쁘고 다음엔 그 옷을 입지 않고 싶을 것이다. 쓸데없이 주눅 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신경이 안 쓰일 순 없을 테지만, 놀리는 것을 무력화시킬 방법은 피하는 게 아니라 정중하게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을 인지시켜주고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어린아이들이라고 다를쏘냐.


나이가 들면서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를 실천하는 경우보다는 똥이 더러우니 좀 치우고 가야겠다는 마인드가 장착되는 것도 같다.

사실 나 자신이 너그럽지 못해서, 아직 내면에 자존심만 앞세우는 열일곱 살의 내가 그득해서 아이들의 세계에 핏대를 세우는지도 모르겠다.

겉으로는 지혜로운 척, 차분한 척하면서 말이다.

이럴 때 느끼곤 한다. '아..... 내가 덜 컸구나'

그냥 귀엽게 여기며 씨익 웃고 지나가주면 안됐을까도 싶고. 왜이리도 나 자신이 치졸해보이는지 모르겠다.


아이 키우면서 앞으로도 이런 소소한 이벤트들은 발생할 테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너무  큰 일이라며 요동하지 않되 타인을 넉넉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이 아이에게, 아니 내게 먼저 단단히 심기길 바란다. (별거아닌 일은 그냥 스쳐지나가게 두고)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랑 같이 하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