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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거북 Nov 25. 2022

엄마랑 같이 하자!

새벽 데이트

"엄마, 나 마음먹고 잤더니 지금 일어났어."

새벽 4시쯤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 읽고 있는 내게 다가온 아들.

자신의 루틴인 말씀암송 책을 가져와 그날 읽어야 할 말씀을 마치고 슬슬 나갈 준비를 시작한다.


오늘은 엄마와 아들의 1:1 새벽 데이트 날.

3일 전부터 새벽 데이트를 해보자고 먼저 제안했던 건 나인데, 내가 자꾸 이런저런 이유로 새벽 기상에 실패했던 터라 "내일은 정말이야!"를 외치는 양치기 소년 같은 엄마를 믿을 수 없었는지 아들이 이번만큼은 자기 전에 마음을 굳게 먹고 자더니 진짜 5시 조금 넘어 기상을 한 것이다.


새벽의 고요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한 요즘, 기도와 성경 읽기, 독서를 마치면 동네를 한 시간 정도 걷는데 그 시간이 그토록 황홀할 수가 없다. 특히 동네를 걷기 시작하는 6시 30분 무렵에는 하늘에 새끼손톱이 잘려나간  모양과 꼭 같은 달이 떠 있고 그 달을 받쳐주는 구름은 온통 붉은 분홍빛을 띤 어스름한 하늘 속에서 아침 해를 맞이할 채비를 하는데 그 과정이 내 열정을 응원해주는 것만 같. 한 시간 정도 걷고 돌아오는 길엔 둥그런 해가 '네 눈에만 나를 소개하는 거야.' 하듯 솟아오른다. 정말 동네에 걷는 사람은 나뿐이다 보니 내게만 주어지는 선물 같았다. 눈이 부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선물이 하늘에 떡하니 자리 잡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이렇듯 새벽이 주는 긍정적 기운을 내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선뜻 새벽 데이트를 제안했던 것이다. 내가 느꼈던 것을 아이가 고스란히 느끼지 않아도 좋다. 그냥 여유 속에서 '함께' 누리는 새벽시간이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아들과 차를 타고 15분 거리 읍내로 향했다. 아침 7시에 유일하게 오픈한다는 도넛 가게에 가서 좋아하는 도넛 하나씩 골라 뜨끈한 차를 곁들여 먹으며 시간 속에서 변해가는 바깥 풍경을 지켜보았다. 선물 같은 새벽의 어둠이 걷히고 점차 밝아지는 바깥세상 속에서 아들과 나는 각자 좋아하는 것을 하며 조금씩 아침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나는 못다 읽은 데미안을 읽고 아들은 색종이로 팽이와 딱지를 접으면서.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데이트는 같이 하는 건데 나는 왜 아들을 앞에 두고 책만 읽고 있지?' 게다가 새벽에 일어나 이미 독서도 끝낸 상태였다. 단지 데미안을 얼른 끝내버려야 도서관에 반납할 수 있다는 생각에 깊은 사유가 필요한 고전을 라면 먹듯 해치우려 했던 것이다. 꽤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자 재빠르게 책을 손에서 내려놓고 아들에게 '같이' 종이접기를 하자며 달려들었다.

 "엄마도 그 팽이 그립 부분 접는 법 알려주라."

그때부터 아들은 네모 아저씨로 변신해서 세상 다정하고 꼼꼼하게 엄마의 어설픈 접기의 전체적인 과정을 터치해 주면서 곳곳에 칭찬을 버무려 주기도 했다. 종이접기 과외를 끝낸 뒤에는 색종이에 편지를 써주었다.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지를 아들에게 글씨로 남겨주고 싶어서. 그 편지를 받은 아들은 뽀뽀를 3번쯤 해주었다지.


그때 느꼈다. 1:1 데이트하면서 너는 어느 정도 컸으니 너 혼자 잘할 것이므로 나는 나 좋아하는 책 읽기나 다른 볼 일을 좀 봐야겠다고 생각해왔던 지난날들이 얼마나 데이트를 빙자하여 아들을 외롭게 한 것이었는지-

같이의 가치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같이 또 따로도 물론 필요하지만 새벽 데이트의 목적은 같이 새벽을 느끼는 거였으니까. (물론 데이트에 목적이 없으면 어떠냐마는 나는 소소한 한가지라도 의미 부여하는 걸 좋아하는 여자라)

지금처럼 몇 분씩이라도 매일 같이하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세상을 긍정적으로, 마음 먹은건 할 수 있구나 하고 미소 지으며 기대할 수 있는 아들이 되길 소망했다. 황량한 새벽녘 어둠을 뚫고 나오는 희망찬 붉은 해와 세상을 향해 성장해 나가는 아이가 닮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꽉 찼다. 무엇으로 채워졌는지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다.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가득 찼다는 표현도 안 어울린다. 그저 '꽉'찼다.

한 달에 한 번, 이렇게 새벽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첫눈이 오는 날을 아들보다 내가 더 기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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