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적 인간과 비회사적 인간

계속 다닐 수 있는 거 맞지?

by 미세스앤

상사에게 털리고도 점심 먹고 동료들과 커피타임을 가지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은 회사적 인간이다.

상사에게 혼나고 멘탈 깨지는 일은 수도 없이 많으며 대부분은 그러면서 성장을 하는 거라고 위로한다.

비회사적인간인 내가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다.


밥 먹고 나서도 커피에 소금빵 한 개를 혼자 다 먹으며 내가 왜 털렸는지 억울함을 토로하며 생각했다.

아, 회사생활 10년 만에 나도 드디어 회사적 인간으로 재탄생했는가.

토요일에 상담 선생님한테 말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좀 성장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


월요일 아침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두근거렸고 꿈에서도 출근을 한 나는 월요일 아침부터 침대밖으로 나오기 싫었다.

금요일에 혼났다고 해서 월요일에도 혼나는 것은 아니다. 일이란 내 뜻이든 아니든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다.

그걸 빤히 알고 있지만 신경질적인 트집들로 토해내듯이 하는 말들을 바로 옆에서 듣고 나면 나는 온몸을 회초리로 후드려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성의 신경질적인 폭발에 취약했다.

전에 4시간짜리 콜센터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다른 직원을 갈구는 팀장의 목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아 퇴사한 적도 있다.

실제 매일 하루에 열 번 넘게 혼나는 그 직원은 대상포진에 걸려가면서도 회사를 계속 다녔다.

그때 나는 파이팅이 부족했던 것일까.

막상 혼나는 사람은 괜찮은데 그 소리를 매일 같이 듣고 있는 나는 스트레스받아서 회사를 그만뒀다.

(아니, 그냥 그건 핑계였을까.)




어쩌면 나는 엄마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아서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천성적인 게으른 사람. 누군가 돈을 가져다주면 쓰기만 부지런히 쓸 수 있는 사람.

그렇게 특별한 종족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그런 환경이 되면 주는 돈 따박따박 받아가며 뒹굴뒹굴 잘 놀 수 있는 사람이 천지삐까리일 것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에 따르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미 다 이룬 것처럼 생각하고 사고방식을 바꾸면 뇌는 금세 그쪽 방향으로 귀가 트여 나를 그 길로 인도한다 했다.


그런데 왜 퇴사는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일까.


하루이틀 집에서 뒹굴거리는 동안에도 칼럼 주제를 생각한다거나 다음 주 보도자료 걱정을 하는 나는 어쩌면 쓰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사랑하는 건지도 모른다.

박봉이라고 지랄지랄하면서도 꼬박꼬박 출근하고 직분에 넘치는 일을 과하게 하며 뼈와 살을 갈아 넣으며 십여 년을 일한 이유가 바로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승진하면 모든 게 더 좋아질 줄만 알았는데 다른 일들이 더 얹히면서 쓰는 사람이라는 내 정체성이 희미해져서 나는 이렇게 맥이 빠지는 건지도 모른다.

고작 이만큼의 급여 상승으로 내가 싫어하는 일들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이 상황이 낯선 건지도.


회사적 비회사적 사회적 비사회적과 상관없이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내게 온전히, 아니 절반이상의 지분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새 업무에 치인 지 7개월, 공황장애를 겪으며 겨우 깨닫는다.


어쩌면 공황장애의 원인이 그게 아닌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할 수 없고 이렇게 피곤한 채로 책을 못 읽는 삶은 너무너무 불행하다며.

보약 먹고 일을 줄이고 운동을 좀 하고.

다 아니고.

약을 먹는 동안 기운을 아주 조금만 내어서 몸을 움직이고 책을 읽겠노라고.

아웃풋이 있든 없든 일단 읽는 것으로 수액을 맞자고.


이 모든 문제는 퇴사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짤 알아서

(돈이 있어야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을 요즘에야 절감하는 중이다)

일단은 오늘도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