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공황장애는 왜 나를 찾아왔을까

by 미세스앤

비는 낭만적인 재료가 아니었던가?

비를 싫어하는 내게도 어쩐지 조금 센티하게 만드는 효과 같은 것이었다.

작년 여름이 되기 전까지는.


새벽 빗소리에 깼다.

둥번개가 요란한 게 아니라 직선으로 내리 꽂히는 비가

하늘에서 바늘들이 쉴 새 없이 내리 꽂히는 것 같았다.

비가 무섭게 온다 라는 문장을 자꾸만 혼자 중얼거리다가

모두의 안녕을 바라는 새벽이라고 생각했다.

잠깐의 기도.

그 기도로 평안을 찾은 나는 곧 잠이 들었다.




누군가의 부고 소식이 들렸고 회사는 어수선했다.

인원을 나눠서 상가에서 조문객을 대접하기로 했고,

매일 언론에 보도된 기사들을 모았다.

조문도 잘 가지 않는 나는 얼덜결에 상주인듯 하루 종일 조문객을 맞았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내가 이렇게 많은 조문객을 맞았던가 돌이켜보며 현타가 세게 왔다.

기자들의 문의가 이어졌고, 법적인 내용 운운하며 질문을 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없었다.

해당 부서로 연결하고 나보다 윗사람에게 연결했지만

나는 전화벨 소리도 회사 출근도 두려워졌다.




타지에 1박 2일 교육을 가면서 터널을 지나는데 현기증과 함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터널은 길었고 휴게소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지, 들여 쉬기 내쉬기를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일단 터널을 빠져나가면 된다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고.

갓길도 없어서 일단은 계속 운전을 했다.

생리 전증후군으로 힘들어서 그러는 줄 알고 PMS 감정 조절을 돕는 허브약제를 세알을 삼켰다.

사실 그거 말고는 달리 먹을 수 있는 약이 없었다.

천천히 갔고 어찌어찌 교육장소까지 도착했다.

혼자서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곳으로 교육을 가서 그런가 보다고 했다.

낯선 이들 틈에서 낯가림하는 내 성격 탓이라고.

나름 괜찮은 휴식의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되돌아오는 길,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

간단한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별것 아닌 일이었는데 전화를 끊고 나니 가슴이 하염없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두 시간 운전해서 올 길을 근 세 시간에 걸쳐서 왔다.

천천히, 호흡을 하고 중간중간 쉬어가며.

나를 잘 달래면서 왔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와서도 두근거림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다음은 눈물이었다.

통제력을 발휘하는 상사에게 분통이 터져서 회의실에서 나는 30분을 울었지만

그때도 눈물은 멈춰지지 않았다.

그렇게 울음보가 터진 날, 정신건강의학과에 전화해서 예약을 잡았다.




불안도가 높아져 있다고 했다.

그러게 왜 그렇게 업무를 과중하게 맡았냐는 선생님의 질책과 함께.

회사 다니면서 저는 이일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어디 그리 쉬우면 이런 병이 왔을까.

그 뒤로도 그 부고는 오래도록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무작정 걱정만 되었으니.

언론사가 벌떼처럼 달려들면 어떻게 하지 걱정한데 비해서 벌떼는 없었다.

단 한 곳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그 틈새에서 나는 "당신이 부장이냐 그럼 왜 답변메일을 보내느냐"

담당자라서 제가 메일을 보냈다고 답했더니

"질문은 그게 아니잖아요! 왜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냐고요!"

라는 고성이 돌아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저희 답변 내용이 메일 내용이며 추가적인 내용 관련해서는

기자님께서 제게 말씀하실 사항이 아닌 것 같습니다" 라는 공손한 대답을 해야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 내 입장에서 해야 하는 말을 했지만 자괴감은 들었다.


약자에게 그렇게 해도 되느냐며 집요하게 취재하던 그 방송국 기자는

높으신 분들과 인터뷰할때는 지르지 못하던 고성을,

유선으로 연결된 실무자에게 지르고 있었다.

말단인 나는 아마도 그 기자가 정한 약자의 범주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정의 편에 선 것 같았던 그 사람은 자기가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에 매몰되어

의기양양해하는 이로 보였다.

그 뒤로 약자, 정의를 위하는 사람들을 나는 쉽게 믿지 않는다.


내가 걱정하고 조마조마해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시간은 흘렀다.

불안을 잠재우는 약의 효과는 드라마틱해서 연말 즈음에는 매사 있던 걱정이 절반정도로 줄어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이제 약을 줄여봐도 좋을 것 같다고 했고

그다음 달에는 괜찮으면 더 이상 오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다시 비가 많은 계절,

나는 다시 전화벨소리에 놀라고 관련 기사에 가슴이 쪼그라드는 통증을 느끼는 중이다.

아직은 발작처럼 뭔가가 일어나지는 않아서 병원 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사건들의 이면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당사자로 엮인 이들은 당연히 너무도 힘든 일이겠지만 가느다란 줄로 연결되어 있는 일반인들.

그저 걱정하는 거 말고는 다른 무언가를 할 도리가 없는 이들.

그들은 어디에 숨어서 걱정을 모으고 있을까.

내가 차곡차곡 모아둔 걱정은 무서운 비에 뭉개지는 종이처럼 흩어지는 걸까.

내가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들은 한 개도 없겠지만

사건 뒤에 있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걱정하게 됐다.

해결의 쓸모와 전혀 상관없이.

이전 01화회사적 인간과 비회사적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