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의 '동네 사람'을 가지고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기 전, 저만의 생각으로 쓴 글입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을 듣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벌써 몇 주 전의 경험이지만 아직도 그 충격은 상당합니다. 주인공이 퀴어라고?
어쩌면 '동네 사람'의 주인공, '둘이 사는 여자'의 관계가 무엇인지, 가족인지 친구인지 룸메이트인지 연인인지 규정하고 정의하려는 태도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닐까요? 그들이 누구이든 간에 그들이 겪는 경험과 삶의 양태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요? 아래의 제 글을 읽고 생각을 나눠주세요.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었기에 몰입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와 비슷한 인물이 등장했다. 나는 ‘동네 사람’의 ‘나’처럼 다른 사람들, 그저 스쳐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했으면 하고 생각하고 동시에 그것을 바라곤 한다.
나는 타인에게 별 기대도 하지 않고 그래서 타인이 나에게 주는 관심은 항상 경계한다. 그런 나에게 ‘동네 사람’의 스토리는 계속 긴장감을 유발했다. 그 긴장감은 소설 끝에서 서술되었듯 오싹함으로 바뀌었다.
p119 그런 너의 충동적인 행동이 그 사람들에게 또 얼마간 확신을 준 게 분명했다.
p120 이곳에서 눈에 띄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싶다. ... 얼마나 섬세하고 큰 노력이 필요한지, 너는 여전히 모르는 게 틀림없다.
p121 우리는 그런 식으로 주목을 끌면서 온 동네가 우리를 멋대로 마음대로 오해하도록 내버려둔다.
p124 그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말을 하고 다니면서도 그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p128 고작 사과를 하고 말고 하는 문제로 ... 사람들의 호기심이 너와 나의 일상 근처를 어슬렁거리게 만들고 싶지 않다.
소설 처음부터 끝나기 직전까지 위의 인용처럼 ‘나’는 계속해서 ‘충동적인 행동’, ‘주목을 끄는’ 행동이 동네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오는 원인이라고 생각해왔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최대한 조용하게 엘리베이터에 타고, 인사도 하지 않으며 남들이 있을 때는 전화통화도 가급적 하지 않는다. 가족과 함께 가다가 사람들이 우리 옆에 바짝 붙어 지나갈 때면 하던 대화를 멈추기도 한다. 나에 대해 뭐 아는 게 있어야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기억하는 게 아니겠어? ‘동네 사람’의 ‘나’ 역시 괜한 소동을 피우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의 관심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소설 말미에서 할머니의 ‘그걸 왜 몰라, 다 알지, 다 안다고.’의 발언에서 그런 생각은 완전히, 처음부터 틀렸다는 것이 드러난다.
내가 아무리 조용하게 있어도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다름 아닌 우리 아빠다. 아빠는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상석’에 앉는다. 사람들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가끔 집에 들어오면 “20층에 그 여자 봤어?(엘리베이터에 20층에 사는 여자와 같이 탔나보다) 그 집은 평일 이 시간에 들어오더라.(그걸 알아차리기까지 1회가 아니라 수 회 관찰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상해, 이상해.”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나는 우리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사람 중 아는 사람은 약 3명뿐인데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동네 사람’의 눈길을 피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조용하게 지낸다한들 우리 아빠의 레이더를 피해갈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동네 사람의 관찰을 불러오는 원인은 소설의 ‘나’가 생각했듯 소란을 피우고 주목을 끄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그 사람이 뭘 하든 간에 궁금하고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