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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아이린 Sep 18. 2024

구월을 지나다가

시 그 콩내음

 얼마 전 서울국제작가축제 작가들의 수다 온라인 대담을 들었다. 인도 철학을 공부했다는 한 시인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대립되는 것을 동등하게 여겨라.' 예를 들어, '승리와 패배를 동등하게', '이룬 것과 못 이룬 것을 동등하게 여긴다'는 것. 순간 머릿속에 느낌표가 그려졌다.   


  산책하며 이 문장에 관해 생각해 본다. 이룬 것과 못 이룬 것이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어떤 목표를 정해서 그것을 이루었을 때는 성취감도 들고 기쁠 것이다. 예를 들어,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했거나 어떤 문학상 공모전에 작품을 냈을 때라고 가정해 본다. 만약 이루지 못했다면? 좌절하고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더 열심히 할 걸 후회할 것이다. 그런데 그 둘이 같다니!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노력했는데 이룰 수 없었다면 다음에 또 도전하면 된다.  이루지 못했으면 다음 기회에 이룰 수 있으므로 좌절할 필요가 없다. 성취하지 못했더라도 그 과정을 열심히 지나왔다면 이룬 것과 다름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요즘 짬나는 시간에 시를 생각하며 몰입하는 시간이 좋다. 어떤 단어가 을지 찾아 읽어보고 새로운 것들을 알고 탐구하는 과정이 즐겁다.

며칠 TV 다큐 프로그램을 봤다. 진행자는 한 동네를 돌아다니며 명소를 살피고 그 지역 사람들과 만났다. 진행자와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한 아파트 상가에 자리한 콩국숫집을 방문했는데 주인장 아주머니가 이야기하는 스토리가 가슴에 와닿았다. 그렇게 힘들게 일했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음을 떠올려 보고 그 이야기를 시로 써본다. 쓴다는 것은 주위를 더 살피게 하는 일 같다.






그 콩내음


하얼빈에서 한국으로 날아가던 날

엄마는 말했다 

동생과 나 배고프지 않게 해 주겠다고

 

달 같은 얼굴로 환하게 웃어주던 엄마는

바다 건너 먼 곳으로 떠났

아홉 살부터 할머니와 살았던

십육 년 동안 나는 항상 배가 고팠다

국수를 먹으며

흰 면발을 이어 붙이면 엄마에게 닿을 수 있을까


엄마는 식당 공사장 일 가리지 않고 하다

몇 년 전 콩국수 식당을 차렸다


아침마다 흰 콩을 삶는다

콩을 삶을 때 나는 비린내는

고향에 두고 온 아이들이 우는 소리

그 콩내음을 몸에 두르고

국수 면발을 뽑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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