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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을 삶다가

시조 <엄마>

by 책읽는아이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드는 생각. 오늘 달걀을 삶아야지. 아침 메뉴 채소, 과일식에 단백질을 챙기는 데는 달걀이 그만이다.

냉장고를 연다. 종이 재질의 하얀 케이스에 담긴 달걀. 까슬까슬하고 차가운 달걀을 하나씩 꺼내 냄비에 넣는다. 수돗물을 받는다. 달걀은 머리끝까지 잠긴다. 이제 숨 쉴 수 없겠지. 태어나 바로 수장되는 달걀들, 미안해!


가스레인지 다이얼을 오른쪽으로 돌린다. 뚜껑을 열어놓은 냄비에서 잠시 후 끓는 소리가 난다. 수많은 기포가 달걀 표면에 달라붙는다. 보글보글 물의 온기가 달걀에 스며들어 서서히 익어가겠지. 달걀이 단단해지는 냄새가 주방을 채운다. 뜨거움이 달걀을 익게 한다.


뜨거워지며 잘 익었나, 하는 일이 생겼다. 시에 대한 마음의 온도를 알아봐 주신 걸까. 중앙일보 백일장에 응모한 다섯 편의 시조 중 한 편이 상을 받았다. 주위의 축하와 격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다 삶아진 달걀들을 찬물에 담근다. 미지근해진 달걀을 접시에 대고 톡톡 두드린다. 갈라지는 껍질, 오른손으로 잡고 왼손으로 껍데기를 벗긴다. 난각막이 미끄러지듯 벗겨진다. 하얀 속살을 드러내는 달걀. 반을 자르니 노른자가 샛노랗게 잘 익었다. 잘게 팔 등분해 소금을 뿌려놓고 콩을 갈아서 만든 두유와 함께 식탁에 올린다. 엄마가 잘 드셨으면 좋겠다.

닭들이 품어보지 못하고 우리에게 내준 소중한 먹거리에 감사하다.





엄마


거실 한편에 모로 누운 청소기


전원을 눌렀는데 반응이 더디다


몸속에 티끌을 담고


기침을 토해낸다


바닥을 느릿느릿 닦으며 나아간다


보이는 곳 안뵈는 곳 긴 세월 닦아내며


한 집안 살핀 생애가


덧없이 낡아간다


- 중앙시조 백일장 차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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