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팔레트에는 계절이 없다

피카소

by 책읽는아이린

세 번째 강의는 '1차 세계대전과 미술의 변화'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작가로는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가 소개되었다. 그중 피카소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피카소는 수많은 여인을 만났고, 그 만남마다 그림의 스타일과 화풍이 바뀌었다. 이는 사랑했던 흔적이 아니라, 여성들을 만나 자신을 확장해 나간 그의 창작 방식이었을까. 각 사람은 새로운 색깔이자 새로운 언어였고, 그 관계로 피카소는 자신만의 팔레트를 계속해서 재구성했다. '삶'이라는 캔버스에서 그는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 변화를 나는 이렇게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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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팔레트에는 계절이 없다

-피카소


그는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니다
하늘을 갈아 끼운 것이다

새벽 같은 여인이 오면

붓은 태양을 기억했고
폭풍 같은 눈동자가 지나가면
선이 울컥 꺾였다


마리 테레즈의 숨결은 부드러운 곡선이 되고
도라 마르의 눈물은 찢긴 선이 되었다

그는 사랑할 때마다 팔레트를 갈아엎었고
익숙한 화풍은 낯선 마음에 밀려났다


사람 하나, 빛 하나,

그는 만남을 물감처럼 썼다

붓으로

자신을 계속 다시 태어나게 했다


그는 한 사람에게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단지

오래도록 물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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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우는 여인 1937


나는 그를 찍고, 그는 나를 찢었다

-도라 마르


나는 셔터를 눌렀다
그의 눈동자에 피가 번질 때마다
빛은 검게 물들었다
전쟁도, 슬픔도, 그도


나는 울었다

그는 그렸다
나는 울음을 찍었고
그는 내 울음을 캔버스에 찢었다


사랑은 늘 새 얼굴을 했다
그는 나를 기괴한 여인으로 만들고
다른 여인의 곡선을 따라
붓끝을 바꾸었다


나는 사진으로 세계를 기억했지만
그는 그림으로 나를 잊었다

게르니카가 세상에 나올 때
나는 사라졌다


비명을 지른 건 그림 속 여인이 아니라
화실 한쪽 구석의 나였다

그가 나를 지웠을 때
나는 완전한 초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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