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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미래에 감사합니다

스며들었습니다

by 하리

세상에는 감사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 모든 것들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어로 땡큐(땡큐~)

중국어 셰셰(셰셰~)

일본어로 아리가또 라고 하지요(아리가또고자이마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말 티비 앞에 시청자를 잡아두던 개그 콘서트. 코너 중에 ‘감사합니다~’가 있었습니다. 중독성 있는 리듬에 맞춰 연신 “감사합니다”를 불러재낍니다.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와 단순 반복되는 율동으로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지요. 가사는 또 어떻구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여 걱정하고 있었는데 더 황당한 일이 눈 앞에 놓여 이전의 일은 걱정거리도 아님을 어필하는 내용입니다.

가령 "수능 시험 날 아는 문제도 틀릴까봐 걱정했는데, 아, 아는 문제가 하나도 없어, 감사합니다." "야구시합에서 응원하는 팀이 지고 있는데, 아, 눈 앞에 치어리더가, 감사합니다."

이 코너를 진행했던 개그맨들은 한 인터뷰에서 "별로 감사할 일 없는 세상에서, 매일 '감사합니다'를 외치다보면 기분도 좋아지고 긍정의 에너지도 솟잖아요.“하고 말합니다. 이들의 말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에 감사할 일이 그렇게 없는 걸까요?


아이와 함께 감사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아이의 감사는 아주 단순하고도 명쾌합니다. 급식이 맛있어서 조리사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던 어제에 이어 오늘은 영양사 선생님께 감사하답니다. 메뉴까지 하나하나 적은 걸 보면, 나도 급식이 먹고 싶어집니다. 다이소에서 5천원어치 살 수 있어 감사하고, 이모 친구가 입던 옷을 물려줘서 감사하답니다. 이유가 필요 없는, 받아서 기분 좋으니 그게 감사하답니다.

반면 나의 감사일기는 억지로 의미부여를 하려는 흔적들로 가득합니다. 처음에는 진짜 감사하기 보다는 그래줘서 감사하고, 그럼에도 감사하다고 쓰더군요. 그러니까 '감사할 거리를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감사일기가 감사합니다'가 되었던 거죠. 헌데 이번에 진짜 감사한 일이 생긴 겁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련의 일들은 그간의 민주화 과정에서 겪었던 아픔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수많은 목숨을 빼앗기고서야 발판을 마련한 민주주의. 거리에 쏟아져 나온 학생과 시민의 울부짖음으로 만들어낸 민주주의입니다. 무참하게 짓밟아버린 대통령과 여당 국회의원들의 졸렬함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청년은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독재 타도와 직선제 쟁취를 외치던 부모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평화적인 촛불시위를 보고 자란 그들은 응원봉으로 정치참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습니다. 응원봉은 그들의 존재감은 물론, 공동체로서의 결속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저항정신의 상징으로 남을 것입니다.

청년들은 건강한 연대를 통해 권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깨가 더 무겁습니다. 내 아이가 나에게서 배운 가치관으로 살아갈 거란 생각에 이르면 온몸이 저려옵니다. 어른들의 어리석은 행동이 아이들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까요?

* 감사 일기 : 응원봉을 들고 '아파트~'를 부르는 청년들의 모습은 이 나라의 미래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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