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가는 학교
중학생 아이는 요즘 깨우기도 전에 잘도 일어난다. 며칠 뒤면 있을 '체육의 날' 행사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지만, 피곤하지도 않은가 보다. 아주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기획력과 행동력을 보이고 있는 아이를 보며 정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이 같이 살아가야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감이 생기면서 동시에 외계 생명체의 움직임에 신기하기도 하다.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사람. 대부분의 사람들의 추구하는 유형이다. 그런데 처한 상황에 따라, 닥친 일이 자신과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공부가 어려운 아이에게 자발적인 학습을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내향적인 사람에게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바라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욕심은 점점 더 커진다.
주어진 일이 무엇이 됐든 선향 영향력을 주는 일이라면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행위에 대해 칭찬하고 격려해야 하는데, 그것이 내 기준과 좀 다른 것이거나 내 삶의 방향과 좀 다르면 마음 한 구석에서 씁쓸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과정도 결과도 뻔한 것이라 치부하기 때문은 아닐까. 뻔한 것이란 성장에 큰 도움이 안된다거나, 앞으로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이라는 판단 때문은 아닐까.
아이의 삶에 끼어들기 보다는 지켜보려고 했다. 아이가 가려고 하는 길 옆에 서 있으려 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 몹쓸 유전자의 힘은 자꾸만 간섭하게 한다. 자꾸만 그 길의 한 발짝 앞에 서려 한다.
반성한다.
그리고 감사한다.
이 말을 오늘도 뇌에 새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