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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오늘도

by 하리

오늘도 내게 하루가 주어졌다. 보이는 것은 해야 할 일들이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고 해야 하는 일이다. 지치고 힘든 하루가 또 시작된다. 들겨 듣는 라디오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진행하는 아름다운 당신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디제이는 매일 말한다. "선물같은 하루"라고. 그래서 그 말을 자꾸 새겨 들으려고 한다. 선물인지, 고역인지 모르나, 선물이 어감도 좋고 기분도 좋으니 고역보다는 선물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래서 하루라는 이 시간 안에서 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렇게 찾아가며 하루를 시작하려고 애쓴다. 애를 써야 살 수 있는 세상, 그게 나의 세상이다.


힘든 시간들을 살아낼 때 억지로 감사일기를 썼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그것 뿐이었는지, 그렇게 살라고 교육을 받은 탓인지 나도 모르게 선택한 감사일기 쓰기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하나도 감사하지 않았다.

하늘이 맑은 것에 감사합니다. 전혀 감사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아 감사합니다. 전혀.

오랜 시간 운전을 했는데 사고가 나지 않음에 감사합니다. 아니었다.

하지만 그냥 썼다. 숙제처럼 썼다. 전혀 감사함이 없는데도 감사합니다로 문장을 마쳤다. 그렇게 1년이 넘어갔다. 매일 썼으니 그 시간동안 감사하지 않음에도 감사하다고 쓰는 내 처절함이 안스러웠다.

이제 생각해보면, 억지로 쓴 감사일기 덕에 견뎌냈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거지.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다. 7-8년은 된듯 싶다. 그 사이 문자로 안부 두어번이 다였던 사이. 적지 않은 추억을 공유한 이와는 별다른 인사법이 없어 편하다. 과거로 되돌아간 느낌도 살짝 건드려 진다. 긴 설명이 필요없는 오랜 사이. 가족은 어떤가? 긴 설명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소통이 안된다. 설명을 하려니 감정이 앞서서 차라리 불통을 선택하게 된다. 힘든 시간들을 혼자 견뎌내야 했을 때 어쩌면 가족도 자기만의 고통을 나름 감내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만큼 그 이상 괴로움에 몸부림쳤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불통을 선택한다. 몹쓸 일이라고 머리가 반응한다. 몹쓸 일이라고....


이렇게 한 번씩 올라올 때 나는 할게 이것 밖에 없다. 자판을 두들겨 끄적거리거나 감사일기를 쓰는 수밖에. 배운게 이것이고, 할 줄 아는 게 이것 뿐이다.

'가로수 사이를 차로 달리는 그 순간 아름다움을 준 이 가을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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