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빌런이 되어 가고 있는 나
가정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자리를 굳혔고, 단체나 모임에서 조차 빌런을 담당하게 되었다
왜 그리 되었을까?
빌런 villain의 어원은 라틴어 빌라누스 villanus다. 빌라누스는 고대 로마 농장 '빌라'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부르는 말이다. 또 중세 유럽에서 영주를 위해 일하는 농노의 의미로 변형되기도 했다. 차별과 가난에 시달리던 빌라누스가 견디다 못해 상류층의 재산을 약탁하고 무력을 행사했는데, 이러한 연유에서 빌라누스는 악당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이 말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악당과는 달리 무언가에 집착하는 사람 또는 특이한 사람 즉 괴짜의 의미로 전이되었다. 빌런이 악당 또는 무언가 특이한 데가 있는, 집착하는 괴짜의 뜻을 가졌다면 나는 빌런이 맞다
그런데 왜
내가?
몸이 먼저 움직인다
해야 할일을 미루거나 빠르게 움직여 주지 않으면 그 일의 주체자인 누군가보다 내 몸이 먼저 반응한다
공지를 안내할 때도, 몸을 움직여 일해야 할 때도, 무언가를 결정할 때도 따박따박 정리가 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앞장 서게 되고, 재촉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부정적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많다. 힘들게 일했다고 해도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면 빌런인 것이다
언제부터?
원래 나는 정극적이거나 능동적인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결정에 잘 따르는 편이었고, 옳지 않다고 판단이 될 때도 먼저 나서지 않았다. 삼남매의 둘째인 나는 무언가를 내세울 기회가 별로 없었다. 좀 뒤로 쳐져 있는 채로 자랐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어떤 일이든 내가 나서서 해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언니가 결정하면 따랐고, 동생이 하자고 하면 도왔다
그렇다면 성인이 되어 살면서 만들어졌다는 말인데
가만 생각해 보면 사색의 기회가 줄었고, 생각한 뒤에 행동하는 기회도 줄었다. 움직이며 생각하는, 다음 일을 떠올리면서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는 상태로 살아지게 되었다. 워킹맘이 다 그런건 아닐텐데, 답답하니까 내가 하는 형상이 지속되다 보니, 지금 하지 않으면?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그 이후에 일이 밀리고 밀려 결국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이리된 것 같다
어떤 일이라도 잘해내기 위해서는 숙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교육봉사를 하고 있고,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자 단체를 구성해 공모사업도 추진해 보았다. 시간을 더 쪼개야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덜 쉬고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덜컥 뛰어 들었다. 일이 힘든게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이 어려웠음을 이제 새삼 또 깨닫는 한 해가 되었다. 일을 맡아 하는 사람의 성향이 너무 달라서, 그때그때 처리해야 할 일들을 미루는 통에 이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몇달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좀더 쎈 빌런이 되었다. 내 편을 만들기 보다 적을 만들지 말자고 했는데, 어쩌면 적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이거 맞나?'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래도 이 도전, 괜찮았다
한번 더 도전해 보려하는데, 그렇다면 또다시 빌런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영원히 빌런으로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어쩔수없는 빌런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