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로 남을 아픔은?
"잡티 하나에 천오백원이래. 어때, 괜찮지?"
지인의 말을 듣고 며칠 동안 '나도 한번 용기를 내봐?'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일주일쯤 뒤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잡티 하나 제거될 때마가 숫자가 늘어나는 거야. 하나, 둘, 셋~
"'음, 뭐 쑥쓰럽지만, 뭐~ 몇개나 되겠어'하고 누워있는데, 50, 51~ 110, 111, 112~ 하는 거야. '어라? 아직도 남았어?' 여기까지 얼마인거야? 개당 1500원씩 헤아리고 있었지. 근데, 어느새 198, 199, 200, 201, 202~ 209, 210~ 어어? 어? 스톱! 원장님 스톱!' 했지 뭐. 얼마나 창피하던지."
"꺄악~ 깔깔깔"
최근에 이렇게 크게 웃어본 적이 있었던가?
밝고 쾌활한 그녀의 말투 덕에 더 크게 웃었다.
"잡티가 그렇게나 많았어?"
"그러게 말이야, 몇만원이면 될 줄 았았는데, 40만원이아 들었어. 아이고 배야~ 깔깔깔."
그래도 웃으면서 전해주는 그녀가 이쁘다.
옷으로 가려지는 뱃살은 내 살이 아니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잡티는 잡티가 아니라면서 그 엄청난 에피소드에 결론을 내렸다.
중년 여성인데 얼굴에 잡티가 하나도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정도 살았다면 어디 얼굴 잡티 뿐이랴 몸 어디엔가, 아니 마음에도 상처나 흉터가 있다. 살아온 만큼의 아픔과 상처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상처는 딱지로 앉았다가 그 자리에서 흉터로 남곤 하는데, 이 아픈 흔적이 성장을 돕는 역사로 전이된다면 모를까, 아직 역사로 자리잡지 못했다면 들춰보고 싶지 않은 현재진행형 아픔일 것이다.
내 인생의 헤게모니를 과연 누가 쥐고 있는가?하는 의문이 생길만큼 내 것이 아닌 인생을 사는 듯한 느낌으로 몇날 몇달을 보내고 난뒤 일어설 준비를 한다. 먹고 자고 일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 영혼없는 웃음을 짓고, 일기를 쓰고,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하는 일을 해내야 하는 이상 그 자리에 멈춰 있을 수 없는게 나에게 주어진 삶이다. 그럼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인게 맞는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왜 아닌가? 주인이 주인 행세를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고인이 되신 이순재님의 생전 영상 몇편을 보게 되었다. 한 영상에서 "누구나 다른 조건에서 태어나고 살게 된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에는 다 의미가 있다. 그러니 삶의 의미를 찾아 자신을 가지고 정진하라."는 말씀이 요지다. 누구나 다른 조건에서 태어나고 살아가지. 맞지. 부모나 세상을 원망하며 사는 건 미련한 일이다. 하지만 그 원망의 대상이 나라면? 잘못 산 것인가?
살려고 발버둥치던 일이었다면, 잘못한 게 아니다. 결과가 치명적이더라도 잘못된 인생은 아니라고 나에게 말해 주고 싶다. 흉터로 남을 아픔을 레이저로 치료할 수는 없지만, 내가 치유해 갈 힘을 지켜내고 버텨내야 한다. 잡티제거는 레이저기에 기대 해결할 수 있지만, 마음에 새겨질 흉터는 나 스스로 다스려 성장의 발판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진주를 만들어낸 조개의 상처 처럼 남은 인생의 밑거름이 되리라 믿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