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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Aug 30. 2020

나는 왜 다른 사람 말을 곱씹고 있지?

회사가 무급휴직 카드까지 내놓았기에 회사를 오래 다닐 마음이 사라졌다. 빨리 이직 준비에 더 박차를 가해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구직사이트를 찾아다니며 이력서를 열심히 넣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리 팀의 선임을 맡고 있는 나의 동기가 옆자리에서 일하던 중 갑자기 나한테 말을 걸었다.


"혹시 화장품 쪽에 관심 있나?"


아차 싶었다. 화장품 회사 몇 군데에 지원을 했는데 그쪽 회사에 지인이 있어 소식을 들은 건가 싶었다.

당황했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니요."

(동기라서 반말을 할 때도 있지만 최근부터 그의 꼰대같은 말투를 보며 거리를 두고 싶어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러자 동기는 그럴 리 없을 텐데라는 약간의 확신을 갖고 다시 물었다.


"다시 한번 물을게. 화장품 쪽에 관심 있나?"


"아니요. 왜요?"

20년 차 부장이라도 된 듯이 내게 질문하는 동기이자 선임의 질문에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동기도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대화가 두고두고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쁜 거다.


아니 지가 뭔데 이렇게 상사라도 되는 듯이 물어보는 거야? 관심 있어서 썼으면 어쩔 거고 아니면 어쩔 건데. 회사에서 무급휴직까지 하라는 마당에 이직 준비를 하는 게 어때서. 우연히 알았으면 모른 체를 하던가 따로 조용히 물어보던가. 떠보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이런 꼰대 같은 말투인가 싶었다.


되돌아간다면 따지고 싶고 쏘아주고 싶었다.

'왜요? 뭐가 궁금한데요? 동기님. 돌려 말하지 말고 제대로 물어봐요 궁금한 거 있으면.'

아니면 '20년 차 부장님 말투로 물어보시네요. 깜짝 놀랐네. 어디 부장님이 질문하시는 줄 알고요. 동기님'


이렇게 대답해줄걸. 제대로 한마디 쏘아주지 못한 마음에 두고두고 그의 말투를 곱씹었다. 그렇게 몇 번 곱씹다가 문득 내가 왜 내 인생에 큰 영향도 관계도 없는 사람의 말에 기분이 나빠야 하나 싶었다. 도대체 걔가 뭐라고.. 왜 내가 동기 녀석의 말에 기분이 나빠있어야 하나 싶었다.




이렇게 나는 남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할 때가 많다. 왜 그럴까? 왜 상대는 큰 의미 없이 뱉은 것 같은 말에 나는 기분이 상해있어야 하나 싶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이렇게 곱씹는 이유는 아쉬움이었다. 그 당시에 바로 내가 기분이 상했음을 뱉어 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말이다. 그 상황에서 바로 이 말을 해줬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 그 상황에서 빠르게 말을 못 했을까?


나는 속으로 그의 말투보다 그의 메시지를 듣고 대답할 필요도 없는 질문에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빠르게 내가 쏘아줘야 할 말을 던지지 못한 채 곱씹게 된 것이다.



그러니 다시 비슷한 상황이 오면 상대의 기분이나 상황을 눈치보지 말고 내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말해야겠다. 그래야 나도 곱씹으며 상대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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