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회사를 내려놓으면 얻는 것들

by 북극곰

퇴사를 마음먹고 나는 힘을 빼고 일하기 시작했다. 적당히 할 일은 하되 회사를 위해 열을 내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조금이라도 실적을 만드려고 자발적으로 하던 야근을 하지 않았다. 아니 야근을 할 만큼 일을 만들지도 않았다. 거래처와 열을 내 싸워가며 실적을 위한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하지 않았다. 내 시간과 내 감정, 에너지를 딱 적당히 민폐가 되지 않을 만큼만 사용했다.



사실 그동안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는 회사에 집중되었다. 통근 4시간과 12시간 이상 근무하던 것을 생각하면 나는 집에서 잠시 눈만 붙였다가 가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잠들기 전까지 머릿속으로 다음 날 업무를 정리하다 잠들었으니 나는 완전한 노예로 살고 있었다. 긴 근무시간, 장기간의 통근시간으로 운동을 하려고 끊어놓은 회원권은 매번 결석하기 일쑤였고 퇴근 후에 나 혼자 뭔가 규칙적으로 공부해보려고 하면 회사에서는 새로운 곳으로 발령을 보내서 회사가 아닌 다른 일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회사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회사에 적당한 시간과 에너지, 그 이상을 투여해 열정을 쏟아낸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니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힘주어 일했기 때문에 좀 더 빨리 회사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퇴사를 마음먹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동안 미뤄뒀던 운동을 하기, 운전면허를 따기, 영어 공부하기 등 회사일보다 내 시간과 일을 더 우선시 하기 시작했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나를 위해 사용하니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도 내려갔다. 평소에는 한 만큼 실적이 안 나오면 퇴근하고도 주말에도 왜 이리 맘이 쓰린지.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어떻게 다음 전략을 어떻게 기획할지 고민하곤 했다. 퇴근은 했지만 퇴근하지 못한 상태로 산 것이다. 그런데 퇴사 결심 이후, 회사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내려놓자 생각보다 실적이 나오지 않아도 차갑게 받아들이고 내 감정도 퇴근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업무의 육체적, 정신적 피로도가 감소했다. 그리고 그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직장인으로서의 내가 아닌 나라는 사람을 위해 사용했다. 글을 쓰고 운전을 배우고 운동을 하면서 다양한 취미를 통해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했다.



업무를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회사를 위한 일이 아닌 나를 위한 일에 더 집중했다. 새로운 툴을 배우고 업무에 적용해보려고 했다. 예전에는 새로운 툴을 배우는데 드는 시간이 효율이 나는지를 고민하고 실적에 큰 기여를 하지 않는 툴이라면 굳이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퇴사를 결심하고 나서부터는 업무를 통해 새로운 툴과 정보를 최대한 습득하려고 했다. 그래서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적고 싶었고 회사에서 쓰는 시간을 회사 실적이 아닌 나에게 더 유익한 업무를 배우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일하니 새로운 툴과 기능을 배우는 게 즐거웠고 회사에서 업무도 좀 더 흥미로웠다. 회사에서 내려오는 목표를 위해 나를 수단으로 삼아 성과를 냈던 예전과 달리 나의 업무 역량 증대를 위해 회사 업무를 수단으로 삼았다.



그러고 나니 더 시야가 넓어졌다. 단순히 회사 안에서 승진하고 더 좋은 팀으로 들어가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에 반해 이제는 시장에서 더 경쟁력 있는 사람,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이걸 깨닫고 나니 출근하는 게 재밌었다. 빨리 퇴사하기 전까지 내게 필요한 것을 회사에서 얻어내리라는 생각에 말이다.



실적을 내려놓으니 스트레스가 줄었고 직장상사가 내리는 인사평가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러니 눈치 보지 않고 연차를 사용하게 되었고 내 일정에 맞춰 회사에서 일하였다. 어쩌면 내게 필요했던 건 회사와 나를 분리하는 연습이 아니었을까?


회사가 성공한다고 내가 성공하는 게 아니고 회사가 망한다고 내가 망하는 게 아니라는 그 심플한 사실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회사를 내려놓으니 더 큰 시야와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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