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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Nov 07. 2020

요즘 애들의 라떼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카페를 가도 달달한 스무디 종류를 마시곤 했다. 특히나 내 돈 주고 씁쓸한 아메리카노를 마신 적은 없다. 내게 아메리카노는 그런 음료였다. 내 돈 주고는 안 사 먹을 커피. 그런데 회사를 다니면 커피를 마실 일이 많아진다. 선배들과 식사 후에, 거래처와 미팅할 때, 회의시간에 단체로 커피를 마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점심식사 이후 다 같이 커피를 마시러 갈 때, 보통 상사가 커피를 사주곤 했다. 막내인 나는 다들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따라 주문했다. 내가 사는 것도 아닌데 다들 마시는 아메리카노가 아닌 다른 음료를 고르는 일이 튀는 일처럼 보였다. 그래서 겨우 한두 모금 마실 쓴 아메리카노를 골라서 한모금 홀짝이고 남몰래 남기곤 했다. 



다 같이 커피를 마실 때도, 내 취향을 숨기고 최대한 금방 만들어지고 저렴한 아메리카노를 고르는 게 사회생활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커피를 안 좋아하니 안 마신다고 하는 것도 튀는 것 같고 적당히 사람들 하는 대로 묻어가려 했다. 내가 진짜 마시고 싶은 거를 숨긴 채 말이다.



그러다 4년 차 정도 되자 이제는 한두 모금 마시고 버려지는 아메리카노가 너무 아까웠다. 차라리 시키지 않았으면 모르는데 내 돈이 아니더라도 누구가의 돈 주고 산 커피가 식어져서 버려질 때마다 돈 낭비 같았다. 그래서 회사에서 커피를 마시러 갈 때면 최대한 튀지 않으면서 저렴한 '아이스티'를 주문하곤 했다.



아이스티는 적어도 커피처럼 쓴 맛에 줘도 안 먹을 음료는 아니었고 아메리카노만큼이나 저렴한 음료면서 가벼운 맛이어서 부담이 없었다. 얼핏 보면 아메리카노와 비슷하니 딱히 튀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뭐 마실래?"라고 물어보면 "저는 아이스티 하겠습니다."라고 주문하곤 했다. 


아메리카노 말고 아이스티


그렇게 아메리카노 아닌 아이스티를 말하고 나니 조금 더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상사분들과 다같이 커피 마시러 가서 음료를 주문할 때 조금 더 용기를 냈다. 


"뭐 마실래? 다들 먹고 싶은 거 골라."

"저는 그럼 바나나요거트스무디 하겠습니다."

"이야! 바나나요거트스무디? 그래그래 마셔"


마시고 싶은 거 골라보라는 말에 냉큼 진짜 마시고 싶은 음료를 말했다. 평소 다들 아메리카노 아니면 라떼 정도였는데 막내가 진짜 먹고 싶은걸 시킨 게 놀라워하신 눈치였다. 그 이후에도 나는 상사가 먹고 싶은 거 시키라고 할 때 진짜 내가 먹고 싶은 바나나요거트스무디를 말하곤 하니 이번에는 상사도 그걸 주문해보겠다고 하였다.


"저번에 자기가 시킨 그거 뭐였지? 나도 그거 한번 마셔봐야겠다."

"바나나요거트스무디 입니다. 맛있습니다!"


제일 윗사람이 그렇게 취향대로 고르자 다른 분들도 아메리카노를 벗어나 진짜 마시고 싶은 음료를 주문하셨다. 키위쥬스, 한라봉티 등등. 각자 주문하는 음료가 달라 주문을 정리하기도 번거롭고 음료를 제조하는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다들 원하는 음료를 선택하는 재미를 가졌다.


아이스티 말고 바나나요거트스무디 



최근에 회사 동기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는 신입사원 꼬꼬마 시절을 지나 이제는 5년 차로 각자 후배들도 생긴 대리였다. 한 동기는 최근에 후배들과 커피를 마시러 간 이야기를 시작했다.


"후배 4명을 데리고 외근 나갔다가 내 사비 보태서 커피를 마시러 갔다. 가서 먹고 싶은 거 시키라고 하니깐 한 후배가 콜드브루 '그란데'를 시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속으로 목이 많이 말랐나 싶으면서도 굳이 그란데를 시키는데 뭔가 기분이 그런 거야! 이건 돈 문제가 아니라 진짜 뭔가 꽁깃꽁깃해지는 기분 말이야."


"흠. 그 후배가 법카로 사주는 걸로 안거 아니야?"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럼 진짜 눈치 안 보고 마시고 싶은 거 시켰나 보네.."


"언니 근데 요즘 애들은 우리랑 다르긴 해. 선배들이 먹고 싶은 거 골라하면 진짜 먹고 싶은 거 골라. 그리고 나중에 후배들 들어오면 나도 그렇게 사주면 되지. 이렇게 생각해서 당당하게 말하는 거지. 그러니깐 언니도 요즘 애들의 그런 걸 보고 배우면 돼~ 나도 후배들이 그렇게 말하는 거 보고 다른 선배들이 커피 사준다고 할 때 진짜 먹고 싶은 거 골라 ㅋㅋㅋ 후배들 보면서 배운다니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요즘 애들은 우리 때랑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해보면 나도 당당하게 바나나요거트스무디를 고른 요즘 애들이었다. 어쩌면 요즘 애들은 적당히 묻어가는 사회생활의 센스가 없는 게 아니라 먹고 싶은 건 당당하게 말할 줄 아는 용기가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바나나요거트스무디 먹고 싶다고 말하는 용기를 갖는데 4년이 걸린 거처럼 말이다. 눈치 안보고 용기 있게 말할 줄 아는 Z세대 후배들 덕분에 사회가 바뀌고 있는거 같다. 취향을 말할 수 있는 곳, 남들과 다른 걸 선택할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라떼는 말이야. 선배들 시키는거 눈치 보면서 좋아하지도 않는 아메리카노 시켰는데 너네는 그러지 마라~먹고 싶은거 시키라고 할때 눈치보지 말고 먹고 싶은거 시켜.  


진짜 먹고 싶은거 말하는데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데, 조금 튀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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