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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Aug 28. 2019

속마음은 숨길수록 멀어진다.

룸메이트가 내 옷을 허락 없이 입었다.

집에서 왕복 3시간 거리에 발령이 나서 자취하기도 통근하기도 애매한 거리에서 출퇴근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침 회사 근처에 사는 친한 언니가 있어

언니에게 월세를 주고 언니네 집에서 통근하며 함께 살기로 하였다.


친한 언니에서 이제 룸메이트가 된 것이다.

함께 살다가 사이가 틀어져서 친구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엄마의 우려에도

나도 털털한 성격이고 언니도 털털한 성격이어서 문제없다고 자신했다.


함께 사는 중에,  퇴근하고 언니와 수다 삼매경에 빠지며 하하호호할 때도 있었지만

좋은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니다.

언니의 연애가 잘되지 않아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날에는 괜히 내가 언니의 기분을 눈치 봐야 하는 순간도 있었고 나도  설거지를 제대로 안 한다며 언니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계속하고 있었다.


나도 털털하고 언니도 털털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어느 날, 언니의 악연이던 지난 룸메이트 얘기를 듣는데 “원래 가족끼리도 수건 각자 쓰는데 내가 보는 앞에서 내 수건으로 발을 닦는 거야 그 룸메이트가."

하는 말에서

‘아, 언니 수건을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있었는데 언니는 수건을 따로 쓰고 싶어 했겠구나.'

언니의 속마음을 다른 얘기를 나누면서 느낄 수 있었다.


어쩐지 언젠가부터 비치타월을 쓰면서 수건을 안 쓰더라니. 수건을 따로 쓰고 싶어 했는데 내가 눈치 없이 언니 수건을 쓰고 빨래도 안 하고 있었구나. 아차 싶었다. 늦게나마 알게 된 언니의 숨겨왔던 속마음에 부랴부랴 새 수건을 주문하여 앞으로는 언니가 새 수건 쓰라고 선물했다.


'언니는 진작 말을 하지, 나도 눈치가 없었네.'


그 이후에 서로 휴가가 엇갈려 나는 본가에 올라오면서 언니와 한 달간 거의 보지 못하고 지냈다.


그렇게 몇 주 뒤에 언니의 인스타에

익숙한 옷이 보였다.


'이상하다. 언니네 집에 두고 온 내 옷이랑 비슷해 보이는데?'

'내 옷이라면 물어보지도 않고 입은 건가?'

'아니야 비슷한 옷일 수도 있어.'


생각하며 일주일 뒤에 언니네 집에 가보니

그 옷을 걸어둔 옷장을 아무리 봐도 옷이 없었다.


'아 인스타의 그 옷이 내 옷이 맞았나 보네.'


세탁통을 뒤져보니 향수에 취한 구겨진 내 원피스를 찾을 수 있었다.

'입으려면 허락을 받던가

허락을 안 받고 입으려면

인스타에 올리지 말고 몰래 입던가

어쨌든 입었으면 빨래를 해놓거나 하지.'


언니가 내 옷을 입는다고 하면 나는 당연히 입어도 된다라고 흔쾌히 허락했을 텐데

허락도 없이 입고 나도 뻔히 볼 수 있는 인스타에 올리고 빨래조차 하지 않는 언니의 뻔뻔함에 어이가 없었다.


'언니가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는구나.

내가 언니라면 친한 동생이라도 허락을 맡고 입거나 했을 텐데..'


그리고 그날 밤, 언니와 오랜만에 집에서 만났지만

그 옷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 옷에 대해 내가 기분이 상했다는 나의 속마음을 꺼내지 않았다. 나의 속마음을 숨기고 언니에게 장난치고 웃으며 나의 불만, 우리의 갈등을 나 혼자만의 마음속에 넣었다.


나의 속마음을 감추므로

우리의 관계를 알게 모르게 멀어지겠지.

언니를 내 맘에서 조금 멀리 두겠지.


속마음을 속에 두고 꺼내지도 못하는 나는

털털하지도 솔직하지도 못하는구나.


사실

'언니 인스타에 올린 사진이 내 옷이었구나! 뭐야 물어보지도 않고~

내일 입으려고 했는데~"

하면

"아 맞다! 빨아야 하는데 깜빡했다. 쏘리"

하면서 끝날 일인데 싶다가도

그 행동의 숨은 의도까지 혼자 고민하니

상상력까지 더해진 나의 속마음을 꺼내놓기에는

반감이 너무 커져버렸다..


숨겨진 속마음이 커질수록 관계가 무너지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피하려고 혹은 말하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속마음을 꽁꽁 숨긴 채 서로에게 한 발짝씩 뒤로 멀어지고 있었다.


함께 살다가 사이가 틀어져서 친구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니라 속마음을 숨긴 채 각자의 마음속에 쌓아두면 관계에 벽이 생기는 것이었다.


함께 살수록 속마음을 터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에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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