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 친근함일까? 만만함일까?
나는 반말에 예민하다.
20대 후반 여자로 살면서 처음 보는 혹은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반말을 듣는 것은 흔히 있던 일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친하지 않은 타인에게 듣는 반말은 익숙하지 않다. 귀에 거슬린다.
나와 같이 일하는 담당님은 팀장인 나보다 10살 이상이 많으시다. 나이와 직급이 반비례하는 우리의 관계에서 서로 존대하는 것은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간혹 나에게 은근슬쩍 반말을 할 때가 있다.
"아가씨가 왜 저런데?"
"뭐? 어떤 거 해달라고?"
그러다가도 내가 그 반말이 뭐지 싶어 뭔가 되묻거나 그 담당님과 단둘이 대화할 때는
'~요'로 끝나는 어미를 써서 내가 직접적으로 반말에 대한 불쾌함을 언급하기 애매하게 만든다.
하루는 그런 담담님과 함께 길을 걷다가 내 또래의 협력업체 직원을 마주쳤는데
"그거 시키는 거 했어? 이럴 시간이 아니라 빨리 올라가서 해서 줘!"
라고 반말로 말하더라. 마치 아이에게 잔소리하는 엄마처럼. 그 말을 듣고 나는 "담당님 저 직원한테 숙제하라고 잔소리하는 엄마 같았어요 방금!"라고 하니
"나보다 어린 사람들은 다 내 동생 같고 아들 같아" 말하며 웃더라.
아니. 사적인 관계도 아니고 직장에서 만난 관계에서 본인보다 어려서 친근하다고 반말하는 건 무슨 경우지?
내가 그녀의 반말에 선뜻 대응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녀의 반말이 내가 본인보다 어리다 만만하게 보는 태도인지 내가 본인보다 어린 친구에 대한 친근함의 태도인지, 참으로 애매하기 때문이다.
물론 의도가 어찌 되었건 나는 그 반말이 듣기 싫다.
나는 그녀와 친근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녀에게 반말을 허락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내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성인이 된 후에 친하지도 않은 사람, 더군다나 회사에서 만난 공적인 관계에서 반말을 듣는 건 불쾌한 일이다.
말하는 사람은 '딸 같아서', '동생 같아서' 친근하다는 의미로 했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본인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동생같고 자식같다는 건 본인의 입장인 거고, 듣는 사람은 언니같고 엄마같지 않다는 것이다.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타인에게 내가 허락하지 않은 혹은 준비되지 않은 반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게 그녀의 반말은 단순히 ‘친근함’이 아닌 ‘만만함’으로 들린다.
아는 동생도 토스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중년 아저씨가 와서 "저거 얼마야?" 메뉴판을 가리키며 반말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그 친구는 "3천 원" 이렇게 반말로 대응하니 그 중년의 무례한 아저씨도 흠짓 놀랐다고 한다. 그 중년 아저씨의 반말은 어린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무시’였는데 똑같이 반말로 대답하니 놀란 것이다.
반면에 예전에 친한 친구의 어머니와 문자를 주고받을 일이 있었는데 “영은씨~고마워요! 늘 응원할게요" 라며 존댓말을 해주셨다. 본인보다 한참 어리고 본인의 자녀와 친구인 내게 존댓말로 문자주신 게 큰 감동으로 남았었다. 자식의 친구이기에 반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을 테지만 성인인 나를 동등한 성인으로서의 존중해주셨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문자를 받고 나도 그 어머니를 더 존경하게 되었었다.
내가 존중받는 길은 내가 먼저 존중하는 길이다.
아무리 동생 같아 친근하다고 포장하여도 듣는 사람에게 반말이 나이가 어려서 듣게 되는 "만만함"으로 들린다면 당신은 상대의 나이를 잣대로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 게.'이런 생각을 품으면서.
존대는 나이에서 자동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나이에 걸맞은 언행으로 얻는 것이다.
당신이 상대에게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며 반말을 쓰고 있다면, 상대는 당신을 교양 없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반말을 할지 존댓말을 할지는
본인이 듣고 싶은 대로 사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