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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Jun 07. 2022

사내 성희롱으로부터 목소리를 냈다.

2022년 솔직하고 당당한 MZ세대들이 사회로부터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 시대가 왔다. 아직 나는 우리 팀에서 가장 어린 나이지만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대기업의 노조위원장이 되기도 하고 정치인이 되기도 하는 걸 보면 내가 첫 사회생활을 하던 7년 전보다 사회가 젊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가 일하고 있는 팀을 보면 왜 우리 팀은 여전히 꼰대같은 아저씨들로 가득한지, 왜 내가 있는 조직만 시대에 뒤쳐지고 있는 건지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아니면 내가 MZ세대로서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꼰대들의 큰소리에 '넵무새'가 되고 있는 걸까?

작년 말에 부서를 이동하고 새로운 팀에 온지 7개월이 되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고작 10명 내외 팀이었기에 팀원들과 꽤나 가까워졌고 그중에서도 나를 이 팀으로 뽑아준 팀장님과는 업무를 같이하며 가깝게 지냈다. 특히나 이 팀장은 나를 때로는 동생처럼 여기는 듯이 챙겨주며 친근하게 대했다. 물론 그 친근함이 내게는 그닥 좋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팀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 팀장은 지극히 사적인 질문인 부모님 직업을 물어보았고 최근에는 굳이 말할 생각이 없던 신혼집을 구하는 예산이 얼마인지까지 물어보았다. 사적인 질문이 불편하긴 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기에 나도 얼떨결에 말해버렸는데 선넘는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준게 두고두고 찜찜했다. 어찌되었건 그 팀장은 꽤나 나를 친근하게 대하며 마치 자신이 나의 오빠인 듯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나를 챙기기도 했다. ‘오빠가 너 챙겨주려고그러는거야.’, ‘오빠가 말이야.’ 이렇게 스스로 오빠라고 칭하며 말하고 했으니. 그렇지만 나는 15살이나 많은 그를 오빠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고 어디까지나 내게 그 팀장은 회사에서 만난 상사였기에 그의 친근함이 약간 불편했다. 그는 나를 편하게 여긴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대화하기도 했고 가끔 별거 아닌 질문이나 업무로 밤 9시, 11시 이렇게 내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그게 사적인 감정이 없다는 건 알지만, 아랫사람이라고 무례하게 대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그리고 4개월 전부터는 그 팀장과 업무가 나눠져서 다른 상사 밑에서 일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좋았다. 업무적으로 타이트한 분이긴 했지만 선을 넘는 친근함을 표현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새로운 팀장과 일하는게 마음이 편했다. 그럼에도 선을 넘어 친근함을 표현하던 팀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게 조직장에게 자기랑 일하고 싶다고 말하라고 하곤 했다. 혹은 그가 이직하면 나를 부를테니 자기 따라 이직하라고도 했다. 그치만 나는 속으로 '아니요,,그건 팀장님 생각이시구요,,제 의사도 고려해주셔야죠'라고 말하며 그의 말에 그냥 대답없이 웃어넘기곤 했다.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는 그 팀장과 함께 일하는게 업무적으로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그 사람과 같은 팀으로 업무를 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팀장과 팀원이 아니라 둘 다 팀원으로 같은 팀이 되었다. 그 사람과 나는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업무를 하는데 그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이 와서 말하거나 혹은 팀에서의 비밀스러운 얘기도 공유해주곤 했다. 아무튼 다시 같은 팀이 되어 같은 업무를 하는데 가끔 그는 이야기 하면서 나를 위아래로 훓어보면서 살이 많이 빠졌다고 말하곤 했다. 혹은 어깨를 만지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순간 만지고 지나가서 나 또한 바로 대응하지 못하였는데 그 스킨쉽이 회사에서 흔히 있는 일은 아니기에 뭐지 싶었다. 그치만 그 사람이 꽤나 친근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스타일이기에 별다른 의미가 없겠거니 넘겼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의 선넘는 행동은 심해졌다.

 



몸무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저는 그래도 몸무게가 보기보다는 많이 나가요.
(그 팀장) (위아래로 훝어보며) 그 말은 글래머러스하다는 거네.

(위아래로 훝어보며) 살 진짜 많이 빠졌다. 00이 수영장가면 좋겠다.


(그 팀장) 남자친구는 부모님이랑 살아?

(나) 아니요. 남자친구 본가가 지방이라 서울에서 자취해요.

(그 팀장) 좋겠네~ 아이 야해~


남해 아난티 가족여행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자

(그 팀장) 남해 아난티는 리조트 안에서 놀기 좋지. 그래서 신혼부부들이 가면 좋아. 신혼부부들은 밖에 여행 안하고 안에서만 놀잖아. ㅎㅎ


(위아래로 훝어보며) 진짜 뱃살도 쏙 빠졌다. 진짜 살 많이 빠졌네.

다른 팀원이 아니 왜 그렇게 자세히 남의 몸을 보냐고 말 했지만 그는 되려 그 말을 한 사람에게 왜 자기를 이상한 사람 만드냐고 뭐라 했다.


남자들끼리 좋은 곳(룸싸롱)갈때 돈이 필요해서 동생한테 빌린 적도 있어.


전직장에서는 룸방 접대로 많이 갔거든. 우리 와이프도 알아. 가서 좋았냐고 물어보면 나는 어깨동무만 하고 술마셨다고 해.


나는 와이프랑 새로운 거 찾아서 종종 모텔 가고 호텔도 가.

다른 팀원이 그런 얘기를 왜 하냐고 말했지만 그는 되려 부부사이에 모텔가는게 왜 이상하냐고 큰소리를 냈다.



그러다가 대망의 회식날, 그는 다 같이 서있고 굳이 나를 터치할 필요가 없는데 허리에 손을 대거나 어깨나 등에 손을 대곤 했다. 그 사람의 손길이 불쑥 등이나 허리에 닿자 나는 그 사람의 손길을 피해서 자리를 이동했지만 또 한 두차례 그 손길이 내 등줄기에 닿을때마다 나는 찜찜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쪽에는 나를 다른 쪽에는 다른 여자동료분을 두고 어깨동무하기까지 했다. 어디까지나 그는 우리팀이 너무 좋다며 친근함의 표현일지 몰라도 집에 와서 이틀간 나는 그 사람이 내 몸에 손을 댄 게 그렇게 수치스럽고 더럽게 느껴졌다. 사내에서 성희롱 교육을 받을 때, 대놓고 음담패설을 한 게 아니라 '어젯 밤에 뭐했어?' 라는 질문도 성희롱이 될 수 있다고 하여 '이런 것까지 성희롱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막상 내가 당해보니 내 허리에 의도적으로 그가 손을 댄게 그렇게 수치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나를 성적인 의도로 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회식이 끝날 때쯤에 또 한번 그의 자연스러운 성희롱을 본 다른 팀원은 그 자리에서 나보고 신고하라고 말했지만 그 팀장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그 팀원이 자길 보내려고 한다며 억울하다는 듯이 큰소리를 냈다. 그리고 조용히 있던 나를 보며 '너는 왜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며 자기만 이상한 사람이 됐다는 듯이 말했다. 응 너만 이상한 사람 맞아.



연휴가 아직도 2일이나 남았는데 남은 연휴에도 그의 성희롱에 허우적대고 있을 걸 생각하니 너무나도 끔찍하고 억울했다. 잘못은 그 사람이 했는데 왜 망가지는건 나의 시간일까. 막상 그 사람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한 줄도 모르고 평화로운 긴 연휴를 보낼걸 상상하니 화가 뻗치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남자친구에게 말하자 남자친구는 펄쩍 뛰며 이건 범죄라고 당장 문자보내서 앞으로 그렇게 행동하지 말라고 말하자고 했지만, 막상 매일 옆에서 보는 사람에게 정색하고 말하는게 두려웠다. 그 사람이 내게 업무적 불이익을 줄 위치는 아니지만 팀내에서 나름 친한 관계가 껄그러워질게 걱정되었다. 그치만 꼬박 이틀이 지나도 머릿 속에 그 성희롱이 맴돌자 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출근하면 그 사람에게 회식 때 취하셨는지 저 계속 만지신거 기억나냐고 말하려고 육성으로 연습했다. 육성으로 말하고 나니 용기가 조금 더 났고 출근 할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올려보고 친구들에게 말하니 사람들도 친구들도 별 미친놈이 다있다며 이건 범죄라고 이런 일은 사과를 받아야 한다며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나는 토요일 저녁이었지만 용기를 내서 문자를 보냈다. 앞으로도 얼굴을 봐야하니 껄그럽지 않게 느껴지게 문자를 보내려고 노력했다. 대체 왜 피해자가 성희롱범과의 관계까지 생각하며 문자를 보내야 하나 싶지만, 인간관계가 한가지 단면만 가진게 아니니 너무 날카롭지 않게 나의 불쾌함을 표현했다. 문자를 보내고도 그 사람이 바로 전화오면 어쩌나 두근거려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계속 통화하고 있었다. 혹여나 전화가 와도 내가 받지 못하게. 왜 잘못은 그 사람이 했는데 내가 덜덜 떨면서 문자를 보내야하는지 나조차 이해되지 않았지만 아무말 하지 않고 있으면 내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 떨리지만 용기내서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30분정도 뒤에 그 사람은 답장이 왔다. 평소와 다르게 극존칭을 하며 죄송하다며 문자가 왔다. 그리고 이내 전화 통화할 수 있냐고 문자가 왔지만 내가 다른 일을 하느라 보지 못하는 사이 부재중도 왔다. 문자를 보내고 벌벌 떨며 답장이 오는 그 사람을 보니 그 사람이 잘못한게 맞고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떨고 있어야 하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희롱은 형사처벌이고 범죄이니깐. 그렇게 벌벌 떨며 자기가 한 짓에 대해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놀라게 해서 죄송하다는 그 사람을 보니 앞으로 껄그러울 직장동료 사이를 걱정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 나니 답답했던 마음이 뻥 풀리고 불안하고 불쾌했던 마음도 조금은 녹아내렸다. 남은 연휴를 불안하고 불편하게 보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니. 그리고 이 불합리한 일을 참지 않고 늦게라도 목소리를 낸 내 자신에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아주 중요한 숙제를 내 손으로 해결한 기분이었다.


상식이 통하는 직장생활을 하고 싶지만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은 어딜가나 있다. 그럼에도 그런 몰상식한 사람에게 잘못된 걸 찝어준 것만으로도 미래의 내가 상식이 통하는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같아 뿌듯하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으면 당당하게 ‘그거 성희롱이고 범죄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테니. 그러니 혹시 저와 같은 일을 겪고 계신 분이 있다면 증거를 남기고 당당하게 말하라고 하고 싶다. 다음 일을 벌벌 떨며 걱정해야 할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라 성희롱 가해자여야 하니깐.

p.s.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나와 같은 일을 당했던 친구도 있었고 주변에 1년간 상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던 지인을 둔 친구도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흔한 일이라는 게..아직도 개같은 놈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욕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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