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 년마다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면서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여기서 배운 것들을 정리해보곤 한다. 곱씹어보지 않으면 놓치는 것들이 있는데 회사에서 매일 하는 일들이 그렇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지난 1년간 일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어떤 부분에서 성장했는지 가물가물해진다. 그래서 시장에 보여주기 위한 이력서와 더불어 나 스스로 나를 되돌아보고 내가 무엇을 배웠고 앞으로 어떻게 일할 지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필요하다.
지난 1년간 나는 기존에 하던 영업직무에서 기획부서로 직무를 옮겼다. 영업을 하면서도 어떻게 매출을 만들어낼지 영업을 기획하는 역량을 필요했다. 그렇지만 정말 하루 종일 기획만 하며 데이터를 다루고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기획을 하는 업무는 처음이었다. 이렇게 1년 동안 기획부서에서 새롭게 배운 것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기획 : 일을 꾀하여 계획함. (국어사전)
기획 앞에 영업, 사업, 상품 등등 다양한 용어가 붙으면서 어떤 것을 구체화시키는 일인지에 따라 일의 목적이 달라진다. 나는 엄밀하게 말하면 사업기획을 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방향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를 기획하는 일로, 손에 잡히지 않는 큰 그림을 구체화시키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이렇게 1년간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 내가 배운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임해야 목적에 맞는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 비단, 기획부서뿐만 아니다. 영업을 할 때에도 이걸 왜 해야 하지 싶은 일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리더에게 늘 질문했다. 우리가 이 일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 일을 통해 회사가 무엇을 얻게 되는지를 말이다. 기획부서에서 기획을 하는데 납득하지 못하는 일을 키우면 영업부서의 수많은 사람들도 이해되지 않는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일의 목적과 얻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하고 지금 하는 이 방법으로 그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신사업을 기획하면 처음 목적과 의도와 달리 방향이 달라지곤 한다. 이렇게 방향이 계속 달라지면 일하는 사람들에게 혼란이 온다.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 정신을 잃지 말고 꺼내야 하는 카드가 바로 'Why'카드이다. 생각보다 리더들도 '우리가 이 일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오픈되어 있다. 오히려 질문 없이 일하고 나서 목적과 다른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더 두려워한다. 그러니 솔직하게 물어보자.
이 일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이 일을 통해 회사(우리 팀 or 당신이)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 건가요?
이렇게 하면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까요?
나는 나의 이런 본질적인 질문들이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의 속도를 늦추는 건 아닐까 걱정될 때가 있었는데 속도를 높이기 전에 필요한 건 명확한 방향을 정하는 일이다.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하게 이해하고 나면 속도는 자연스럽게 붙는다. 그리고 일을 하는 중에도 이게 우리의 목적에 부합하는지 스스로 계속 되물어야 한다. 그래야 방향을 잃지 않고 원하는 결과에 맞춰 달려나갈 수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을 때, 데이터를 찾아보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마치 데이터에 모든 디렉션이 쓰여있을 거라 생각하며 데이터를 들여다보았지만, 데이터는 답이 없다. 흩어진 데이터 조각들을 어떤 방향으로 보고 패턴을 찾을지는 데이터 그 자체가 아니라 데이터를 보는 사람의 손에 달려있다. 그래서 데이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설이 필요하다.
가설 1) 고객들은 이런 니즈가 있을 것이다.
가설 2) 고객이 이런 니즈를 가지고 있으니 우리는 00을 보완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에 맞는 데이터를 찾아서 보아야 한다. 아무 데이터를 모아서 본다고 답이 들어있진 않더라. 어떤 패턴을 보고 싶은지, 어떤 가설을 검증하고 싶은지 의도를 가지고 데이터를 봐야한다. 데이터, 그 자체가 답을 가지고 있지 않고 데이터는 주장을 서포트해주는 도구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래서 아무런 생각 없이 데이터를 보면서 솔루션을 찾으려고 하니 마치 망망대해에서 항해는 기분이었다. 가설과 의도를 세우면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봐야 할지 방향이 세워야 그림이 그려진다.
기획은 한 사람의 머리에만 의존할 수 없다.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 완벽하지 않기에 각자 낸 의견은 필연적으로 완벽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팀 회의를 하다 보면 누군가의 로직에 대해 비평을 하면서 문제 제기하게 되는데 사실 대책 없는 비평은 팀에 도움되지 않는다. 그 로직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발언자 또한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고 절반짜리 답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같은 팀이라면 단순히 로직을 비평하는 게 아니라 그 로직에 대한 자기만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팀 회의를 통해 부족한 로직과 기획안을 발전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팀워크이다.
그 로직은 편중된 결과를 낼 거야. 그렇게 하면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X)
그 로직을 어떻게 구체화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건 어려워. (X)
그 로직에 이런 오류가 발생할 수 있으니 00 로직으로 적용해보는 건 어떨까요? (O)
A라는 데이터를 추가로 보면서 로직을 검증해보는 건 어떨까요? (O)
팀에게 필요한 건 서로가 서로에게 대안과 의견을 제시하며 부족한 점을 보완해나가는 것이다. 나 또한 솔루션을 내지 못한다면, 일단 따라가 보는 자세도 필요하다.
이렇게 지금까지 배우고 깨닫고 느낀 점을 되새기며 더 좋은 기획자로 성장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