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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Sep 06. 2023

집을 사고 잠을 자지 못했다.

"연말까지 기다리면 연말까지 안 팔린 매물은 또 가격을 내릴 수 있으니 좀 더 기다려보세요."


부동산에서 연말까지 기다려보라는 말에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치만 지난 8개월간 8명의 부동산 중개인을 만나봤지만, 확신에 차 집값이 좀 더 내릴 것 같다는 부동산 중개인의 말은 보기 좋게 빗나가있었기에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 없었다.


'연말까지 기다렸는데 내가 사고 싶은 매물은 빠져있거나 집값이 더 올라있으면 어쩌지? 그걸 저 부동산이 책임져주지 않으니,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


몇 개월 전만 해도 조금 기다리면 집값 떨어질 것 같다는 부동산의 말을 100% 신뢰했다. 그래서 천천히 임장 다니고 추이를 살펴보고만 있다가 뒤통수를 탁 맞듯 집값이 5천~1억씩는 올라있으니 집값에 있어서는 상승론자도 하락론자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가득 차게 됐다.


"그 매물은 집주인이 13억에서 13.5억으로 올렸어요.. 그래도 보시겠어요?"

"아 11.8억이었던 매물은 어젯밤에 계약금 들어갔다고 하네요.."


그렇게 지금 갭투자로 먼저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반신반의하던 참에, 구경이라도 하려던 매물은 어느새 내 손을 떠나 있었다. 가격이 조금 괜찮다 싶으면 바로 거래되거나 가격을 다시 올렸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 외에 최저가 매물은 동향, 서향 혹은 1~3층의 저층이었으니 맘에 드는 가격대의 맘에 드는 매물을 찾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가격에 맞추면 2층 매물이거나 동향 매물이었으니깐. 반대로 맘에 드는 매물을 골라보려면 어느새 매매가 5천은 우습게 올라가 있었다.

'아... 집값이 오를 것 같아...'


집값이 조금 떨어질 거라고 여유로던 올초와 다르게 부동산을 돌아다닐수록 집값이 더 올라있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지금 살 수 있는 매물이 한두 달 뒤에 더 올라있음 어쩌지?' 게다가 신축의 브랜드 아파트를 임장 다녔더니 눈은 높아만지고 있었다. 마침 정부에서는 신생아특공이라는 지원책을 꺼내 들어 왠지 집값이 좀 들썩이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신생아특공은 9억 이하 매물에만 해당되어 당장 내가 관심있는 매물들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9억 이하 매물의 수요가 높아지면 9~10억대 매물의 가격대가 소폭 오를 것이고 그럼 또 그 윗 가격대인 12~13억대도 덩달아 오르지 않을까?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또다시 부동산이 올라갈 것만 같았다.


아예 부동산을 돌면서 매물 추이를 보지 않았으면 모를까. 아니다. 그냥 몇 년 정도 쭉 추이를 봤거나 부동산 경험이 많았다면 여유로웠을까? 어설프게 올초부터 고작 8개월을 보면서 집값이 다시 상승하는 걸 보니 다시금 영끌 카드를 꺼내 들어야 하나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부동산 중개인은 매물 보려던 게 가격이 올랐지만 12억 5천 매물을 12억 2천까지 네고해보겠다며 12억 2천에 네고되면 살 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집주인 맘 변하기 전에 무조건 계약금 넣고 12억 2천이면 사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최근에 같은 라인의 9층이 12억2500만원에 거래되었기에, 그보다 고층인 집을 12억 2천으로 살 수 있는 건 기회라고.. 말이 빨라지며 나보다 더 애태우는 그녀를 보며 덩달아 내 마음도 애가 탔다. 애초에 12억 2천짜리 매물이었다고 하면 바로 살 생각이 안 들었을 텐데…12억 5천으로 올렸던걸 다시 12억 2천까지 깎아본다고 하면서 이건 진짜 사셔야 하는 매물이라며 조급하게 말하니 뭔가 12억 2천이 엄청나게 메리트 있는 가격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당장 안 사면 또다시 몇 천이 오를까 봐 겁이 났고, 나보다 더 가까이 현장에서 계속 매매 분위기를 봐온 부동산 중개인이 확신에 차 말하니 덩달아 나도 흔들렸다.


‘놓치면 안되겠다!’

"12억 2천까지 네고되면 살게요! 네고해주세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나는 '고'를 외쳤다. 영끌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세세히 계산해보지도 않고 말이다. 심지어 갭이 큰 매물이었기에 갭투자를 위해 신용대출을 받아야 하니 남편이랑도 심도 있게 논의해봐야 하는데,,, 부동산과 통화한지 불과 이틀 만에 매매 고를 외쳐버린 것이다.


"이 매물은 세입자가 보여주지 않아서 못 보고 사야 하고, 내후년에 전세만기인 매물이니 네고를 적극적으로 해볼게요."


집을 보기도 전에 계약금을 넣어야 하고, 계약금 넣고 나서야 집을 볼 수 있는 매물이었다. 집을 보지도 않고 12억짜리 집을 사야 했다. 내 생애 최초 주택매매를 보지도 않고 산다니. 신축이고 해당 타입의 집을 지난 1월에 임장 다니며 구조를 봤기에 나는 불확실함에 베팅하고 결국 급하게 계약금을 넣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카톡으로 '사도 되는 거지? 괜찮지?'라고 조급하게 말하며 답정너처럼 결국 질렀다.

그렇게 나는 계약금을 덜컹 입금했다. 정신없이 계약을 마치고 보니 비싸게 산 건 아닌지 걱정하는 남편이 눈에 보였다. 남편은 사실 연말까지 기다려보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12억 5천 매물을 12억까지 부르고 네고가 안되면 안 사도 된다고 생각했다며, 12억까지는 네고가 안될 것 같았기에 천천히 관망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아차.. 나는 왜 12.1억에 네고되면 사자는 걸로 이해했지? 조급한 마음에 남편과 신중히 따져보지 못하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이틀 만에 전화만 하던 부동산과 냉큼 계약을 해버렸구나.'


 이미 계약했으니 돈 열심히 모으자고 말하며 그에게 자신 있게 집값은 오를 것 같다는 나의 논리를 펼쳤다. 마치 겁에 잔뜩 든 고양이가 더 앙칼지게 울면서 쎈 척하는 것처럼.



그렇게 밤새 아실과 호객노노를 뒤져보며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전 실거래가 정보를 보면서 중개인의 심리전에 말려든 건 아닌지 겁이 났다. 급하게 계약금을 넣느라 잔금일자도 제대로 협의하지 못한 것도 있어서 여러모로 남편에게 면목이 없었다. 내가 성급하게 계약해서 재테크는커녕 자산 손실을 보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 부담을 고스란히 남편에게 지우고 있는 건 아닐까?


평소 집은 현금으로 사는 게 아니라 레버리지 활용해서 배짱으로 사는 거라는 말에 공감하던 나는 현실감각을 잃은채 정말 배짱을 크게 부렸댜. 하.. 차라리 계약서 쓰기 전에 계약금으로 먼저 넣은 천만원을 포기하는 게 나을까. 천만원짜리 샤넬백을 산 셈 치고 관망하다 보면 다시 5천 이상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확신에 차 급매라도 잡은 듯이 급하게 계약금부터 입금했던 자신감은 어디 갔는지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후회하고 있었다.


지금 시세로 보면 아주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아직 우리가 살고 있는 전세 계약이 1년이나 남은 시점에서 급하게 금융비용을 내면서까지 갭투자를 할 만큼의 메리트가 있었을까? 모두가 각자의 논리 속에서 상승론자, 하락론자가 되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부동산 속에서 나는 사지 않고도 후회하고 사고도 후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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